기필코 한 주먹만 / 詩 박정만
살아야겠다, 기필코 저승에서 목매달고 죽어서라도. 아직은 남은 꿈이 굴뚝새 나는 밤물결 같고 들머리 지나는 뜬구름의 그림자 같애.
속이 영 거북하고 초저녁 잠 같은 저승의 발길, 난 안 들었어, 난 아니 들었어. 이대로 밑도 끝도 없이 나둥그라지다니.
그것은 절대로 아니 될 말씀, 한세상 오금 펴고 꽃길을 저어 가야지. 순풍에 돛달고 저어 가야지. 노젓는 사공 없으면 아무렴 어때.
개코 같은 말씀인지 딴은 몰라도 이 터수에 거짓말할까. 한없는 목숨의 끝이 있어서 모르면 몰라도 하늘자락 한 끝은 보여 주겠지.
기필코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

어느 시인의 죽음 / 詩 박성민
1 변두리 허름한 헌책방 먼지를 푹 뒤집어 쓴 시집 한권 툭툭 털며 읽는다 여성지와 중학교 문제집 사이에 꽂혀있는 시인 박정만 〈그대에게 가는 길〉 유고시집 기필코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던 시인의 시집 靈肉을 짜내 쓴 시인의 피울음이 곰팡이로 앉아 있는 시집 속 시인의 눈은 눈물겹게도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헌책방 나와 낮술 마시며 시인이 응시하던 하늘을 보았다 타다 남은 연탄 같은 여름 해 아래 질식할 것 같은 어떤 삶의 원형을
2 죽음이란 결국 무엇인가 밀려 떨어지는 톱밥처럼 우울하게 이 땅에서 시인의 죽음은 정육점 쇠꼬챙이에 걸린 고기 덩어리 같은 아아, 시의 살과 피
3 짙은, 먹빛으로, 빠르게, 번지는, 구름떼 불현듯, 쏟아지는 장대비 (아아, 저 쇠창살, 쇠창살)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가져온 시다.
박정만의 시와 박성민의 시를 읽으면
요즘 나른함에 젖은 나약한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아주 사소한 일로 이별을 결심하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일로 죽음을 다짐해 보기도 하던
어리석음 속에서 이 시는 내게 희망을 전해 주었다.
- 기필코 한 주먹만 더 살아야겠다.- 라고 말하던 박정만의 말처럼
나도 '기필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시를 접하게 해주신 들꽃님과 한시알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