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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세 헤쳐온 한글, 영어 핵폭탄도 막아낼까

한시알 2014. 10. 6. 11:56

등록 : 2014.10.05 22:04수정 : 2014.10.06 11:05

한 주를 여는 생각

한글전쟁-우리말 우리글 5천년 쟁투사
김흥식 지음
서해문집·1만7500원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영어를 모르는 이들은 이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김흥식의 <한글전쟁>은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한글은 (단순한) 표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새로운 문맹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한글전쟁> 셈법에 따르면 ‘영어와의 핵전쟁’은 우리말·글 제6차 대전에 해당한다. 1차 대전은 서기전 3000년께 중국 화북지역에서 그림문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됐고, 2차 대전은 세종의 한글 탄생과 함께 벌어졌다. 연산군의 한글에 대한 ‘쿠데타’와 임진왜란을 거쳐 한글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3차 대전은 기성 한문체제에 대한 한글의 승리로 끝났다. 4차 대전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한글 말살정책으로 촉발됐고, 5차 대전은 광복과 분단·전쟁을 거치면서 시작된 한글 전용 대 한자 혼용의 끝없는 쟁투였다. 그것은 6차 대전 와중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한글의 미래를 좌우할 전쟁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이처럼 수천년의 사투에서 살아남은 우리말·글의 역사로 볼 때 6차 대전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만큼 한글은 우수하다. 하지만 과거의 외부 언어 침투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수용 계층이 상부 위주로 한정적이었다면, 지금의 수용 태세는 매우 적극적이고 전면적이란다. 모든 계층이 돈벌이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를 추구하고 있으며 전자·통신혁명은 과거와는 달리 시공간적 장애도 거의 없애버렸다.

우리말·글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한글전쟁>은 묻는다.

한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말·글, 우리 문화의 적은 누구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수천년 사투끝 영어와 전쟁…한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자 재활용이 조어력과 독해력에서 약점을 지닌 한글을 보완해 영어와의 핵전쟁급 전면전을 헤쳐나갈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자를 특정국가의 국어가 아니라 서양의 라틴어와 같은 동아시아 전래의 공동자산으로 간주한다면 논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자의 등장에 대응해 중국 주변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도 한자를 모방하거나 변용한 독자적 문자들을 만들어냈으나 대부분 다 소멸했다. (1번부터 7번까지 순서대로) 여진, 파스파, 쯔놈(베트남), 몽골, 서하, 만주(왼쪽 윗부분. 나머지는 한글), 일본 문자. 서해문집 제공

“우리 사회가 영어를 숭배하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자부심을 느끼는 반면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수치심을 느끼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영화 배급사들은 자신있게 원어 제목을 그대로 붙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에 저항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김흥식의 <한글전쟁>(서해문집 펴냄)은 영화 배급사들의 그런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고 말한다. “그토록 한자 사용에는 거부감을 나타내는 수많은 한글 애호가들조차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이 개별적 방식으로 문제점을 지적할 뿐 정책적, 조직적, 학술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처음 척후병을 파견했을 때 한글의 방어를 예상했던 영어 진영은 의외로 아무런 방어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성곽 곳곳에서 자신들의 진입을 위해 문을 열고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닫자 전면적으로 공격에 나선 것이다. (…) 영어라는 침략군에 맞서 한글 진영이 설치한 장애물은 없다. (…) 지금 영어는 한글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핵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영어에 자기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언어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경제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을 많이 벌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도 조만간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언어 중 하나일까?

한자에는 그토록 거부감을 나타낸 
수많은 한글 애호가들조차 
영어에 맞설 장애물은 만들지 못했다
세계를 상대로 한 영어의 핵전쟁에는
경제 논리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은이는 지난 30년간 미국 유학을 경험한 한국인 수를 70만으로 추산하면서 그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로 편입되는 날 “대한민국은 이미 대한민국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필사적으로 경쟁하며 추구해 온 돈벌이와 풍요의 끝, 그 사투와 진화의 끝이 결국 자기부정이라면, 끔찍하지 않은가.

피침략자의 자기부정이 침략자와의 동등한 자격 취득으로 이어진다면 또 모르겠으되, <한글전쟁>에 따르면 그건 불가능하다.

19세기 중반에 하와이의 왕 카메하메하 4세는 하와이 주민의 더 나은 지적 발전과 수입, 외국인과의 대등한 관계 수립을 위해 영어 교육을 전면화했다. 백년도 지나지 않아 영어는 하와이인들의 일상어가 됐지만 하와이인들은 몇몇 예외야 있겠지만 외국인과 대등해지지 못했고 대다수는 저임금에 천대받는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 일제 때 조선인들의 처지가 그랬고, 말·글을 잃어버린 청 제국의 후손 만주족의 오늘날 처지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은이는 진행 중인 영어와의 ‘핵전쟁’을 수천년에 걸친 한자와의 대전, 한글 말살을 국가기획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추진했던 일제와의 피어린 언어전쟁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본다.

그가 5년 전 <한글전쟁>을 위한 기획을 세우고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절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5천년 전 중국에서 그림(상형)문자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우리말과의 전쟁은 그 뒤 갑골문자를 거쳐 서기전 200년 전후 한자가 한반도에 도입되면서 본격화한다.(제1차 대전) 한자어의 유입과 함께 고구려·백제·신라 고유어들은 대량 폐사했지만 당과 손잡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한자어를 우리말에 접목시켜 재창출한 서기체(임신서기석 표기 방식), 향찰, 이두, 구결 등의 ‘차자표기법’을 통해 1차 문자대전은 휴전상태에 들어간다.

세종의 한글 창제와 함께 시작된 2차 대전은 내전이었다. 그 전쟁 역시 한자와의 공존을 통해 휴전이 성립됐지만, 기존 세력의 지분을 대폭 먹어들어간 한글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약 반세기 동안 한글은 과거시험 과목이 되고 궁중 여인들에겐 한글편지가 일상화했으며 하층민들이 한글 투서를 날릴 정도로 세력을 급속히 확장했다. 이 투서를 단초로 한 연산군의 한글에 대한 ‘쿠데타’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도 선조가 ‘유시’(포고문)를 한글로 발표할 정도로 한글의 힘이 커졌고, 혁명을 꿈꾼 허균은 한글로 <홍길동전>을 썼다.

하지만 실학파조차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상층 계급의 그런 한계를 뚫기 시작한 것은 동학농민전쟁의 시작을 알린 국한문 사발통문에서 보듯 중·하층민이었다. 1894년 11월, 창제된 지 450년 만에 한글은 공식 문자(국문)가 됐다. 한글 교육기관이 서고 한글 신문과 책들이 쏟아져 나온 근대의 시작과 함께 제3차 한글대전도 시작된다. 정치·사회 혁신과 더불어 진행된 그 전면전이 한글의 승리로 귀결될 무렵 일제의 침략과 함께 4차 대전이 시작되고 조선어학회 사건에 이르는 전면적인 저항도 시작됐다. 그리고 광복과 함께 시작된 제5차 대전. 한글 전용 논란, 한글 간소화 파동,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글 전용 대 한자 혼용 전쟁, 그리고 6차 대전.

여기서 어쩌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이 등장한다.

한자 어원을 모르는 세대가 자라면서 
조어력 부족한 한글 전용만 고집하면 
신문물의 명칭을 영어에 의존하고 
영어 문화권 편입을 피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한글 전용의 경우 한자 어원을 알 수 없는 세대가 이어지면 한글의 근간을 차지하는 한자어들의 경우 그것 자체만으로는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단순 기호가 돼버릴 것이라 걱정한다. 그리고 한자 같은 표의문자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표음문자, 그중에서도 음소문자인 한글의 조어(造語)력과 독해력 문제를 짚는다. 예컨대 영어 컴퓨터란 말을 표의문자인 한자는 뎬나오(電腦)라는 고유의 뜻글자로 옮겨 그 의미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글 또한 생각틀이나 전자지능기, 또는 컴퓨터로 옮길 수 있는데, 그 자체만으론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컴퓨터란 말을 주로 쓰고 최근엔 아예 영어 원어를 그대로 쓴다. 외부 언어 습득을 거의 사교육에 맡겨두고 있는 국가와 영어 숭배도 그걸 재촉한다.

“조어력이 부족한 한글 전용을 고집하는 한 신문물의 명칭을 외국어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일 뿐 아니라 결국에는 그 외국어가 영어처럼 대부분의 문물을 표기한다면 영어라는 문자, 나아가 영어 문화권에의 편입을 피할 수 없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김흥식은 오랫동안 불가분의 관계로 공존해온 한자 재활용을 ‘영어 핵폭탄’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한자를 서구의 라틴어처럼, 특정국의 국어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래의 공동유산으로 본다면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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