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여든 인생 첫 시 낭송하는 '진보운동의 산역사' 백기완

한시알 2016. 2. 3. 22:49
여든 인생 첫 시 낭송하는 '진보운동의 산역사' 백기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치열 기자

"자본주의 문명을 깨뜨리는 비나리, 쓰러져도 계속 할 것"…"모든 예술·철학·사상, 자본주의 문명 부정에서 출발해야"

백기완 소장이 29일 열리는 <민중비나리> 현수막 앞에 섰다. @이치열


한국 진보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백기완(81)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생애 첫 시낭송회 무대에 선다. 단순한 '저항시'가 아니다. 백 소장은 오는 2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수천 년 전부터 억압당하던 이들이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말하던 민중의 시 '비나리'를 선보인다. 백 소장의 비나리에선 하찮은 생물이 천년 가뭄을 이기고 무너지는 하늘을 갈라치는 '쇳소리'를 내는 영웅이다. 이번 비나리에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해방통일 세상'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백 소장의 철학과 예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셈이다. 

공연을 일주일 앞둔 22일 만난 백 소장은 "자본주의 문명은 노동자의 땀과 한숨, 비극도 삼켜 자기 재생산의 재료로 쓴다"면서 "비나리는 자본주의 문명의 썩은 늪, 침묵까지 삼키는 늪을 깨뜨리는 현상타파의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여는 계기)"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또한 "누가 이 비나리를 다시 하자고 한다면 어디든지 달려가려고 한다"며 "살아있는 동안 비나리가 사람의 정서를 대표해온 진짜 예술이며,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비나리 낭송의 밤을 열겠단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지난 2009년과 2010년 두 해에 걸쳐서 한 번은 대학로, 한 번은 서울대학교 대강당에서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 이야기>란 공연을 했어. 그때 내가 무대에 걸었던 구호가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고 그랬거든. 그 공연의 연장이 이번 '비나리 낭송의 밤'이야." 


-이번에는 어떤 구호가 걸리나.


"'죽음을 넘어서는 민중의 쇳소리'와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털어라'란 구호를 무대 양옆에 걸려고 해. 긴장의 미학이지. 무슨 말이냐. 긴장을 '쭈삣'이라고 하거든. 무슨 긴장이냐면 생명 아닌 것과 맞싸울 때 나오는 생명의 몸짓이야. 박근혜, 오바마는 반생명이라, 그것과 맞싸울 때 나는 쭈삣, 진짜 생명을 긴장이라고 그래. 다시 말하면 생명의 창조가 긴장이지요."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털어라'는 무슨 뜻인가. 


"요새 체제 내 경제학자들은 경제 성장이 경제의 실질을 설명을 하는 원천이라고 해. 돈 버는 것만이 경제라고 한다고. 돈은 누가 만들어? 땀이, 노동이 만들잖아. 따라서 번다는 건 땀을 뺏는다는 거요, 이에 땀의 주인공은 거지가 된다는 거잖아. 그러니깐 돈을 버는 사람이 경제의 원리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야. 자본가들이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야. 그래서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털어라'는 거야." 


-비나리란 민중미학 형식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시는 글로 적고 표현하잖아. 그런데 삼천년 전에 이 땅에 글은 한문밖에 없었거든. 그때 한문을 아는 사람은 천명 가운데 다섯 명이 안됐어. 이천년 전쯤 되면 천명 가운데 한 스무 명쯤이고. 그러니까 글이란 지배계층의 지배도구요, 따라서 그 글로 시를 짓는다는 건 시는 시되 한갓된 것일 수밖에 없는 거야. 여기서 글을 모르던 절대다수 무지랭이들은 시심도 없고 따라서 시를 못 썼겠어요. 아니다, 말림으로 했습니다. 말로 짓되 온몸으로 해대는 것, 그것을 비나리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비나리는 시와는 달리 생명을 죽이려는 반생명과 맞선 의지와 결단이 정서적으로 전개되는데도 글을 아는 이들은 이것을 상놈(머슴)들의 사람 같지 않은 짜증이나 뜨저구니(심술)로 짓밟아 민중적인 것을 죽여 왔지. 아예 시로 치지도 않은 거야.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사람 문학의 실체인 비나리를 살려야 참된 사람의 예술이 이 잘못된 문명을 깨트리는 예술에 보탬이 된다 이거지. 


-이번에 읊을 비나리는 몇 편이나 되나.


"글로 발표하는 게 아니라 말림으로 발표하는 거야. 15편 가운데 11편은 새로 창작한 거고, 4편은 개작을 했지만 사실은 새로운 거지. 아마도 비나리 형식의 발표 마당은 역사상 처음일 겁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이치열 기자 


-비나리 낭송의 밤에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몇 편만 소개해 달라.


"첫 번째에 나올 비나리 제목이 <아, 따끔한 한 모금>이야. 옛날 천년 가뭄이 들어서 다 죽어가는 데도 조그만 굴뚝새가 죽어라고 비를 불렀습니다. 비가 안 오면 기우제라고 해서 비를 빌지? 이건 가진 이들의 정서의 행태지요. 진짜 땀을 흘려본 이들은 내 것 내놓으라고 해. 땀을 흘리면 김이 돼서 하늘로 올라가잖아. 그래서 비를 불러.근데 비를 부르던 굴뚝새도 죽어가자 굼벵이가 지렁이 오줌으로 따끔한 한 모금을 빚어 주었습니다. 따끔한 한 모금이 뭔지 아세요? 술이야. 진짜 배고파 보면 따끈한 밥에 미역국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따끔한 한 모금이 먹고 싶어. 정말 가난이, 기근이, 착취가, 억압이 뭐인 줄 아는 사람이 먹고 싶은 건 따끔한 한 모금이야. 굼벵이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지렁이 오줌으로 따끔한 한 모금을 빚어주었더니 굴뚝새가 다시 힘을 내서 비를 부르는 소리가 얼마나 눈물겹던지 이 땅별 지구에 있는 모든 곰팡이와 이끼 그리고 미적이(미생물의 우리말)가 다 울었는데 그 눈물이 큰 비가 돼서 천년 가뭄을 이겨냈더란 이야기야. '이 눔의 세상, 이거 굼벵이만도 못하구나'라고 하는 <따끔한 한 모금>이지요. 자본주의 문명이 굼벵이만도 못하잖아. 있는 놈은 뜰에다 수영장을 만드는데 우리는 목말라 죽어도 개의치 않는 세상, 그런 부조리한 세상을 지킨답시고 검찰, 경찰이 있고 군대, 국가정보원이 있고 사람 잡아다 패는 비밀 고문실이 있고. 그러니깐 '이 눔의 세상, 굼벵이만도 못하구나'는 엄청난 고발의 구호야." 


-다른 시 몇 편도 소개해준다면.


"<쇳소리>라는 시도 있지요. 장마가 져서 집이 통째로 떠내려가는데 지붕 위에 올라 있던 암탉과 수탉이 갑자기 비에 젖은 나래를 펴더니 (높고 가는 목소리로) '꼬꼬댁 꼬꼬' 그러는 게 아니라 (힘차고 굵은 목소리로) '질라라비 훨훨!' 그 한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하늘이 짝 갈라지고 비가 그치자, 사람들이 그걸 보고 '죽음도 넘고 무너지는 하늘도 갈라치는 소리가 쇳소리로구나'라는 시도 있고요. 세 번째로는 <묏비나리>야. 내가 80킬로가 넘었는데 잡혀가서 매를 맞고는 40킬로가 됐어. 그때 내가 드러누워서 내 죽음을 돌파하는 비나리를 웅얼거렸던 거야. 그걸 이번에 정식으로 발표해. 나는 29일 목소리로 비나리를 읊는 게 아니고, 온몸으로 울 것 같아요." 


-왜 비나리라는 형식으로 이런 내용을 전달하려는 건가. 


"자본주의 문명은 삼키는 문명이야. 노동자들의 땀, 한숨도 비극도 삼켜. 그래서 몽땅 다시 재생산 구조의 재료로 써먹어. 다시 말하면 돈벌이로만 써먹는 거야. 이걸 거대한 침묵이라고 그래. 삼키기만 하니 자본주의 문명은 침묵까지 삼키는 썩은 늪이라고 볼 수가 있지요.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현상교착, 또는 미적질곡이라고도 하지요. 하지만 제아무리 침묵까지 삼키는 부패의 늪이라고 하더라도 솔방울 하나를 퐁당 하고 던지면 미적질곡이 깨지는 겁니다. 비나리는 이 자본주의 문명의 썩은 늪, 침묵까지 삼키는 늪을 깨뜨리는 현상타파의 새뚝이,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인류 문명에 던지는 솔방울 하나일지 모릅니다." 


-질문을 오늘의 문제로 돌리겠다. 박근혜 정권 1년 어떻게 평가하나. 


"세속적으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지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비판한다면 난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때까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재자 가운데 박근혜와 같은 독재자가 없었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가 조선, 고려, 삼국시대에도 왕이 있었지만 그 당시 왕과 비교를 하더라도 박근혜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 


-어떤 의미인가.


"난 일생을 땀 흘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해방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또 일생을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있었기에 보통 선거제도가 형식적으로라도 있게 된 겁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만들었어. 근데 박근혜는 내가 만든 선거제도로 대통령이 됐으면서도 나를 전과자로 만들었어.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했다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나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했어. 내 얘기라서 그런 게 아니야, 민주주의를 위해서 몸부림 쳐온 역사를 전과자로 만들었다는 말도 되는 게 아니에요."


"두 번째로 국정원의 선거개입, 다시 말하면 부정선거가 다 드러났는데도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아니라고 하는 건 무엇입니까. 거짓말 아니에요. 거짓말 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입니까, 물러나야지. 


세 번째로 지금까지 우리들이 사람이 되고자 몸부림 쳐온 문화적ㆍ역사적ㆍ학문적 축적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참된 문명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사람입니까. 아니지요." 


-박근혜 정권을 세계사적 도마에 올려놓는다면 어떻게 보나.


"분노가 타오르지요. 냉전이란 한반도를 둘로 딱 갈라놓고, 세계도 둘로 딱 갈라놓은 거야. 세계가 넓고 사람이 많고 민족과 말이 많은데 어떻게 딱 둘로 갈라놔? 이런 범죄가 없습니다. 그래서 냉전 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몸부림을 사람이 하는 최고의 몸부림으로 봐왔습니다. 그리하여 냉전 시대가 끝났는데도 엉뚱하게도 박근혜 정권은 한반도에서 냉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80년대부터 자본주의 모순을 지적할 때 독점 자본주의라고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라고 했습니다. 독점자본주의의 극악한 모순을 신자본주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신자유주의를 주장한 게 아닙니다. 5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표된 미국의 경제적 모순이 신자유의의 극악성을 스스로 폭로했잖아요. 따라서 신자유주의 극악한 모순 때문에 고통 받는 이 땅의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됐든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신자유주의를 자기 것처럼 신봉 관철하려드니 이렇게 뿌리가 틀린 정권이 어떻게 존립할 수가 있습니까."


 "또 하나 지적할 게 있수다. 역사란 뭐요? 잘못된 역사를 갈아엎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참된 역사입니다. 그런 역사를 진보의 역사라고도 하지만 그건 피눈물의 역사라고 하지요. 이건 아무리 주관적으로 거부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주관적으로 그걸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예 유신시대를 다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참 엄청난 위기에 빠져있지만 그 위기를 허무주의적으로 눈 가리는 게 더 위기입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올바른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적 반란 말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 허무주의적 반란을 자행하고 있음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허무주의적 반란은 실패로 끝날까.


"허무란 아무것도 없으니 실패랄 것도 없습니다. 밥을 굶으면 밥 한 숟갈만 있으면 죽음을 면할 것 같지? 하지만 여러 해를 굶으면 '따끔한 한 모금'이 먹고 싶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없을 땐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 줄 아세요? 눈에선 소금덩어리, 기름덩어리, 핏덩어리가 나오는 걸 피눈물이라고 합니다. 그 피눈물을 먹으면 눈이 떠져. 어둡고 밝은 것이 보인다 이 말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피눈물이 뭔지 모르는 게 아니라 아주 죽이고 있어요. 그게 바로 사람과 역사를 잡아먹는 허무주의이지요." 


-세계의 문화현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서서 다니는 걸 사람의 역사의 기초로 보잖아요. 사람처럼 덩치가 큰 짐승이 서서 다니는 경우는 없었어. 그래서 사람의 문화, 문명이 일구어진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300만년 동안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거든. 근데 그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됐습니다. 사람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문명은 그야말로 허무주의적 반란이야. 이걸 사람이 깨우쳐서 사람이 극복해야 됩니다. 나는 자본주의 문명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예술, 철학, 사상도 '사람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문명은 아니다'에서 출발해야 된다. 그렇게 못하면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이 땅별 지구를 망치는 범죄자가 되는 거라고." 


-언론인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


"언론을 진짜 우리말로 '딱마디'라고 합니다. 자기 소리에 스스로 소스라쳐 깨우치는 소리, 사람이 사람을 깨우치는 사람의 소리. 언론인들이 그 딱마디를 안하고 있어. 요새 언론은 딱마디를 안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딱마디를 죽이는 개소리를 해. 집어치워야 해!" 


-올해로 여든이 넘었다. 15편의 비나리 낭송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소리는 서서 내. 그러다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하고, 그래도 말하기가 힘들잖아? 그러면 드러누워서 하려고 해. 드러누워서도 소리가 안 나오면 안간소리를 내. 쇳소리를 내는 거지. 죽음을 넘어서는 소리, 하늘이 무너져도 뚫고 일어나는 소리. 나는 비나리 낭송의 밤을 하다가 쓰러져 눈뜨기가 힘들어도 쇳소리를 하다가 죽을 거야. 걱정할 거 없어. 끝까지 쇳소리를 한다니깐…." 


-비나리 낭송은 이번에만 할 건가.


"내가 이렇게 늙었어도 비나리 낭송의 밤은 처음이거든. 희랍신화를 보라고. 시나 이야기를 모두 강단이나 운동장에서 시를 읊었어. 하지만 일하는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예들은 시가 없는 줄 알아왔지만 아니야, 시가 있었는데도 시로 대접하지 않고 계속 죽여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비나리를 죽여 온 역사라니깐. 인류 역사상 몇 백만 년 만에 처음 열리는 비나리 낭송이야. 또 누가 이 비나리를 다시 하자고 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려고 해. 왜? 내가 있으니까 비나리 낭송의 밤이라도 하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비나리가 사람의 정서를 대표해온 진짜 예술이요,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주고야 말겠다 이 말입니다."

조수경 기자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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