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칠순 질라라비가 그리는 엄마 질라라비 - 백기완스승님

한시알 2005. 7. 24. 01:00
칠순 질라라비가 그리는 엄마 질라라비
[오마이뉴스 2005-07-23 12:00]
[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백기완 <부심이의 엄마생각>
ⓒ2005 노나메기
"부심아, 제 아무리 달콤한 엿이라고 하더래도 땅에 떨어진 건 먹는 게 아니야. 씹어 봐, 모래 때문에 이빨이 바사져. 그래도 또 씹으면 끝내는 이빨의 뿌리까지 썩어.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알겠어? 이빨 없는 호물떼기가 되는 거야. 호물떼기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겠어?

갑자기 범이 나타나 '부심이 너 이놈 잡아먹겠다, 어흥'하며 덤벼도 싸울 수가 없어. 그대로 잡아먹히는 거야 알겠어. 어서 뱉어, 제 아무리 단 것이래도 땅에 떨어진 건 먹는 게 아니래두."

"싫어, 난 그래도 먹을래."

그러면서 입속의 단 것이 너무나 아까워 앙앙 울었다. 그러자 부심이 엄마도 난데없이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었다. 그때 부심이 엄마는 오메 서른둘, 남달리 예쁘고 하얀 그 얼굴에 시커먼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었다. 이를 본 부심이는 저도 모르게 꽥꽥 뱉으면서 울음을 뚝 그쳤다. -16~17쪽, '땅에 떨어진 엿은 주워 먹는 게 아니다' 몇 토막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스승도 없이 혼자서 공부한 뒤 한평생을 통틀어 이 땅의 노동운동과 빈민운동, 통일운동에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바친 사람이 있다. 13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뒤 예순 한 해 동안 조국 분단이란 철조망 때문에 글월 한 닢 띄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삶보다는 남의 삶을, 조국을 쥐어짜는, '땅에 떨어진 엿' 같은 조국의 운명과 맞서 싸운 사람.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분단식민지 시대까지 "숱하게 쓰러지고 꼬꾸라지고 흔들려" 오면서도 한 치의 빈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

백기완. 그는 그러한 자신을 똑바로 일으켜 세운 것은 "그 어떤 꿈도 아니고 그 어떤 깨침(철학)도 아니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고 나의 끈질긴 참을 힘 그것도 아니고 너절한 뚱속(욕망)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못 박는다. 그것은 오로지 13세 살 때 헤어진 "어머니에 마주한(대한) 쌈불(바닷속 화산) 같은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되뇐다.

"우리 어머니와 같이 산 십삼 년은 일본제국의 식민지지배 시대였고 입때껏 헤어져 살고 있는 것은 우리 땅덩어리를 함부로 뿐질러 놓은 분단식민지 시대이고 보면 이것은 달구름(세월)과 함께 부들부들 떨며 일어서는 온몸의 노여움이지 한갓된 눈물만은 아닐 터이다."-'머리말' 몇 토막.

통일운동가이자 시인 백기완(72) 선생이 자신이 태어나 13살까지 살았던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보낸 어린 날들을 되돌아보는 이야기 <부심이의 엄마생각>(노나메기)을 펴냈다. 특히 이 책은 책을 내기에 앞서 "아는 분 천 사람에게 책값 만 원을 미리 주시오 하고 어거지 글월"을 띄워, 몇 백 명이 책값을 미리 내 꾸려진 뜻 깊은 책이다.

모두 43꼭지로 묶인 이 책은 글쓴이가 어린 날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코바늘로 삼아 부심이란 아이를 통해 씨줄과 날줄로 꼼꼼히 엮어나간다. 부심이는 글쓴이의 어릴 때 덧이름(별명)이다. 그 이름은 "파아란 풀빛 바지에 빠알간 댓님, 빠알간 저고리에 풀빛 고름의 옷"이란 뜻으로, 어머니께서 그 옷처럼 살아가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부심이 춤' '떡도 없는 굿판에선 기침이라도 해야' '남의 배를 채워 주려면 제 배는 좀 주려야' '엄마의 비나리' '너희 아버지는 크지, 크게 생겼다니깐' '부심아, 학교란 일등을 가리는 데가 아니란다' '엄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 전쟁이 터졌대요'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엄마에게 띄우는 마지막 글월' 등이 그것.

백기완 선생은 머리글에서 "우리 어머니, 그 분은 나의 하제(희망)요, 따라서 이것은 우리 엄마의 꿈, '질라라비'의 외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만 년 동안 사람의 된머슴이던 닭이 제 본떼(성질) '질라라비'를 찾는 꿈처럼 마침내는 스스로 해방자 질라라비가 되고야 말겠다는 엄마의 꿈"이라고 곱씹는다.

"그럼, 엄마도 꿈이 있었지. 그런데 그 꿈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었어."

"그럼, 그게 무어야."

"뭐이긴."

그러면서 엄마 품에 안기자 그때서야 입을 여신다.

"부심이 너, 된머슴하고 통머슴하고 어떻게 다른 줄 모르지? 된머슴은 그 목숨도 제것이 아닌 머슴이고, 통머슴은 제가 낳은 애들의 살고 죽는 목숨까지도 모두 제 것이 아닌 머슴이라는 뜻이거든. 그게 누구냐, 바로 이 땅의 여자 조선의 여자라는 거야.

여자란 태어나면서부터 발이 묶이고, 허리도 묶이고, 손도 묶이고, 목도 묶이고, 마리채도 묶이고, 웃음도 묶이고, 울음도 묶이고, 골나기(화내기)도 묶이고. 그러니까 죽고 사는 것도 몽땅 묶여 제 것이란 하나도 없어 머슴은 머슴이되 통머슴 그랬거든. 그래서 엄마는 말이야, 그 굴레를 찢어팡개치고 질라라비가 되는 게 꿈이었어."

"질라라비라니, 그게 뭐이야."-135쪽, '엄마의 꿈' 몇 토막

엄마는 '질라라비'가 뭐냐고 묻는 부심이의 물음에,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는 닭들의 꿈이 '질라라비'라고 말한다. 먼 옛날에는 그 닭들이 대자연 속에서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며 자유스럽게 살았는데, 그 닭들을 사람들이 잡아 집안에서 기르게 되면서 점점 날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생을 노동, 빈민, 통일운동에 몸 바치는 시인
통일운동가 백기완은 누구인가

▲백기완
노나메기  
"이것은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애들처럼 어머니를 그리는 나의 피눈물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눌러도 눌러도 어쩔 수 없이 솟구치는 피눈물, 그 얼룩진 자욱이라고 털어놓는다." -'머리말' 몇 토막

통일운동가이자 시인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서 공부를 했다.

1954년부터 1961년까지 농민운동과 나무심기운동, 빈민운동을 했으며, 1967년에는 <백범사상연구소>(1984년 통일문제연구소로 바뀜)를 세웠다.

시집으로 <이제 때는 왔다><젊은 날><백두산 천지><아, 나에게도>가 있으며, 수필집으로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 놈 아니요><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백기완의 통일이야기><장산곶매 이야기 1,2><이심이 이야기><우리겨레 위대한 이야기><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가 있다.

그 밖에 <항일 민족론><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영화극본 <대륙><단돈 만 원><쾌지나 칭칭 나네>가 있다.

지금,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계절마다 내는 책 <노나메기> 발행인을 맡고 있다.

/ 이종찬 기자

엄마는 날짐승이었던 닭들이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게 되자 "제 짓(재주)을 빼앗기고, 제 집을 제가 짓는 제 짓도 빼앗기고, 제 먹거리를 제가 만드는 제 짓"마저 다 빼앗겼다고 부심이에게 말한다. 그리고 "알을 낳아도 낳는 쪽쪽 사람들한테 다 빼앗기고도 모자라 손님이 오면 목숨까지 빼앗기잖아"라고 덧붙인다.

엄마가 말하는 '질라라비'는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몽땅 다 빼앗겨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닭들이 마침내 깨우쳐 옛살라비(고향)로 날아가 제 뿌리를 되찾은 그런 닭이다. 엄마의 꿈도 바로 그 질라라비가 되는 것이다. 즉, 부심이의 엄마 또한 남존여비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진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반장이 된 부심이가 교실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달려가려고 했을 때다. 선생님이 앞을 가로막더니 부심이를 부른다.

"부심아, 이제 너는 그냥 학생이 아니고 반장 학생으로 달라졌어, 그런데 또 하나만 더 달라져야 할 것이 있어. 그것이 무엇인 줄 알아? 차림이 달라져야 돼. 먼저 그 더듬한 솜바지 저고리를 학생옷으로 바꿔 입어야 하고, 둘째 그 너덜한 짚세기를 벗어 던지고 운동화를 신어야 돼. 그러니 이제 집에 가서 엄마더러 새 학생옷과 새 운동화를 하나 사 달라고 해 가지고 내일부터는 날씬하게 차려입고 와야돼요. 반장처럼 말이야. 알겠지요?"

이 말을 듣자 부심이는 씽긋 그냥 집으로 와라와라 달려 들어가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일등 했어. 그래서 반장이 됐어. 엄마, 나 일등을 했다니까."

-146쪽, '학교란 일등을 가리는 데가 아니다' 몇 토막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부심이는 공차기 놀이가 하고 싶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교는 공차기 놀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부심이는 "우리 형이 그랬는데요, 학교에 들어가기에 앞서 5학년 교과서 분수까지 다 풀고 가면 학교에선 내 마음대로 공차기 놀이를 할 수가 있다고 그랬어요"라며 선생님에게 대든다.

기가 막힌 선생님은 칠판에 분수 셈을 내어 부심이더러 풀어보라고 한다. 부심이는 그 분수 셈을 쉽게 풀어버린다. 그러자 선생님은 더 어려운 분수를 낸다. 그때 부심이는 칠판 앞에 나가지도 않고 속셈으로 풀어버린다. 그 때문에 부심이는 하루아침에 그 반의 반장을 맡게 된다.

엄마에게 마구 으스대고 싶었던 부심이. 하지만 엄마는 부심이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일등 이등이란 없는 거야"라고 말한다. 엄마는 학교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고, "애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할대(원칙)를 익히고 배우는 데지 , 일등 이등을 따지는 데가 아니야"라고 부심이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엄마, 큰일 났습니다. 제가 경찰서에 잡혀가 매를 맞고 죽을 뻔했다가 엄마 때문에 살아난 걸 모르시지요./ 저 북쪽 천 리 밖에 계시는 우리 엄마가 어떻게 저를 살려냈겠어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한참 전쟁에 쫓기다보니 올해로 제 나이가 벌써 스무 살, 동생 순이도 어느덧 열여섯,

때문에 이제쯤은 저 하나를 겨냥한 생각보다도 전쟁으로 어렵게 된 사람들을 내 손으로 감싸주어야 하겠다 그런 뜻을 다져야할 때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폭격으로 다 타버린 잿더미 위에서 학교도 못 가고 발발 떨고 있는 꼬마 예닐곱을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떨어진 채알(천막)을 쳐 '달동네 배움의 집' 그렇게 써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저를 마치 부셔(적)나 되는 것처럼 매달아 놓고 치는 겁니다.

-313~4쪽, '엄마에게 띄우는 마지막 글월' 몇 토막

13세 살 때 엄마와 헤어진 부심이도 어느덧 스무 살이 된다. 그때는 한국전쟁이 터진 지 삼 년 째다. 그때 부심이는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달동네 배움의 집'을 연다. 하지만 경찰들은 '하꼬방'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달동네'란 이름을 붙인 것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부심이를 끌고 간다.

이때 부심이는 '하꼬방'은 왜말이라고 대든다. 비록 "다 깨진 집터들이지만 그 위에 허연 눈이 덮이고 밝은 달까지 뜨니 그게 그렇게 멋져 달동네"란 이름을 붙였다며. 하지만 경찰들은 오히려 일본말을 싫어하는 걸 보면 빨갱이가 틀림없다며, "네 뒤가 누구야, 누가 시킨 거야, 대라"며 가혹한 고문을 한다.

부심이는 경찰들의 모진 고문에 고추장에 비벼먹은 깡보리밥까지 왕창 게워낸다. 그러자 경찰들은 부심이에게 그 게워낸 보리밥을 핥아내라며 더욱 모진 고문을 한다. 부심이는 몇 번이나 까무러친다. 그렇게 부심이가 "아주 넋살을 잃었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부심아, 일어나거라. 그까짓 매에 죽을 네가 아니구나. 그까짓 보리밥이나 게우다가 죽을 네가 아니라니깐."

<부심이의 엄마생각>은 13세 살 때 엄마와 헤어진 뒤 지금까지도 글월 한 장 올리지 못하고 있는 백기완 선생이 북쪽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어린 날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차분하게 더듬어보는 일종의 회고담이다. 백 선생은 수필동화 형식으로 묶은 이 책을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엄마의 존재가 자식에게 얼마나 큰 스승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짚게 한다.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의신문>에도 보냅니다

-책 구입/(02)76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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