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빛사랑채

지율과 황우석…2006년 한국사회의 두 자화상

한시알 2006. 1. 23. 23:17
지율과 황우석…2006년 한국사회의 두 자화상
[프레시안 2006-01-23 17:20]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지난 21일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는 1500여 명의 촛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1500여 명의 시민들이 촛불 집회를 연 것이다. 멀찍이 이 자리를 지켜보면서 지율 스님을 생각했다. 전날 의식을 잃은 지율 스님은 스스로가 촛불이 돼 온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터였다. 그리고 지금 그를 위해 촛불을 드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호랑이를 복제해 놓아도 살 수 있는 자연이 없다면…
  
  지율과 황우석. 두 사람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많다. 두 사람 다 불교계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한번 마주쳤을 법도 하건만 그런 기회도 없었다. 황우석 교수는 지난 2004년 4월 '노인 폄하' 발언을 속죄한다는 취지로 정동영 전 장관이 단식을 할 때 지지 방문을 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황 교수는 불교신자들의 지지 방문이 쇄도했던 지난 2005년 초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손을 마주잡고 사진이라도 찍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스웠을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 한국 사회의 정반대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율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으로 대표되는 뭇 생명의 가치를 세상에 일깨우기 위해 '생명을 건 약속'을 묵묵히 이행하고 있다. 반면에 황우석 교수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인간 생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배아 연구로 명성을 쌓았다. 배아 연구 과정에서는 수많은 배아의 희생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황 교수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생명윤리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지율 스님은 끊임없이 묻는다. 자연과 인간이 과연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황우석 교수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떻게 자연계의 질서를 파악하고 장악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의도대로 자연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보니 세상사에 대한 해법도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황 교수가 멸종 위기 동물을 복제해 세상에 선보이려 한다면, 지율 스님은 더 이상 멸종 위기 동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연과의 상생을 모색한다.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해 놓아도 살 수 있는 자연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언젠가 지율 스님에게 동물 복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언론의 보도
  
  이런 차이 탓일까? 두 사람은 언론으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아 왔다. 언론들이 황우석 교수의 사기행각을 좇느라 바빴던 탓인지 지난 두 달간 지율 스님 관련 뉴스는 언론에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다. 사실 지난 4년간 지율 스님은 늘 찬밥 신세였다. 비교적 주목을 많이 받은 지난 2004년 말~2005년 초의 100일 단식 때도 언론은 그의 단식이 100일 가까이 됐을 때야 비로소 지면을 내주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식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던 일부 언론들은 일제히 정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자료에 근거해 "지율 스님 때문에 2조5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쌍심지를 켰다. 하지만 실제로 시공사가 1년간의 공사 중단으로 본 피해액은 50억 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부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됐을 때 운영 수익과 부가 효과까지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2조5000억 원은 과하다. 실제로 경부고속철도는 현재로서는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가 불가피한 '밑 빠진 독'이다.
  
  그런가 하면 조갑제 씨 같은 이는 지율 스님의 단식이 끝나자마자 '과연 100일 단식이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며 남달리 왕성한 기자정신을 선보이기도 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언론의 대접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그가 공항에서 걷지 않고 뛰어 다니는 것까지도 기사가 됐다. 물론 그의 연구와 그 응용 가능성도 과장돼 보도됐다. 그의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마저 '기업들이 응용 가능성에 회의를 하면서 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인간 배아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사이언스〉 2005년 6월 10일자), 국내 언론들은 그의 연구가 머지않아 수조 원의 이익을 낳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묘사되던 그 연구는 현재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은 조작됐고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커녕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한 복제배아 줄기세포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은 여전히 '그런 줄기세포가 존재했고, 바꿔치기 당했을 것'이라는 황 교수의 희망 섞인 주장에 널뛰기를 하고 있다.
  
  지율과 황우석, 두 사람이 대변하는 것
  
  지율 스님과 황우석 교수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삶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처음 경부고속철도 터널 공사 반대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율 스님의 요구는 아주 소박했다. 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엉터리로 진행된 환경영향 평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고속철도 자체가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한 정치, 경제 논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실제 대구~부산 간 노선이 결정될 때 환경 훼손도 최소화하고 공사비도 수천억 원 절감할 수 있는 대안 노선이 존재했는데도 정부로부터 외면당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율 스님은 이제 결과만을 중시하는 성과주의, 매사에 '돈'을 강조하는 경제주의에 저항하고자 한다. 그는 이런 성과주의와 경제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희생당할 가장 약한 존재들을 위해 온 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황우석 교수는 어떤가? 그는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간 배아 연구를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거창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 비전은 어떤 때는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획기적인 치료법의 개발로, 또 어떤 때는 수십 년 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의료 산업의 등장으로 채워졌다. (이 두 가지 비전은 현실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줄기세포 연구가 의료 산업과 연계될수록 대다수의 저소득 난치병 환자는 그 수혜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황우석 교수는 생명윤리를 도외시했고 더 나아가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도 서슴지 않았다. 성과주의, 경제주의의 행보 앞에 거리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그는 연구 성과를 조작하는, 과학자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었다. 그는 입에는 '난치병 환자'를 달고 다녔지만 시선은 항상 약육강식 사회의 맨 꼭대기의 '힘이 센 이들'을 향해 있었다.
  
  지율 스님과 황우석,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그 자리에 꼭 1년 전 수십 명의 시민들이 지율 스님을 위해 촛불을 밝혔었다. 그나마 지금은 그 수십 명의 시민들도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사람은 '국민 과학자'가 돼 꼭 지켜야 할 사람이 되고, 스스로와 세상에 한 약속에 충실하려는 한 사람은 '요승(妖僧)'이 되는 현실, 이것이 바로 2006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미래는 늘상 과거에 빚을 지는 동시에 발목을 잡히기도 한다. 2006년의 자화상이 예비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