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스크랩] 영어천재에서 `우리말 쓴 빨갱이`로-진보 큰어른의 칼칼한 `호통 댓거리`-백기완스승님

한시알 2008. 2. 10. 11:28
영어천재에서 '우리말 쓴 빨갱이'로
진보 큰어른의 칼칼한 '호통 댓거리'
[인터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노나메기 벗나래' 이야기
천호영 (razliv)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백기완

"'인터뷰' 그러지 말고 '댓거리'라고 해.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을 날카롭게 맞부딪쳐 진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방식을 우리는 '댓거리'라 그러거든. 그렇게 이해하고 '댓거리'란 말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 참 드물어, 특히 언론계에선."

 

미리 각오는 했지만 꾸지람과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다. 백기완(76)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해방공간이던 13살 때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남으로 내려온 소년. 서울역 앞에서 걸인 등을 만나며 평생 민중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고 빈민운동과 농민운동을 벌였던 청년운동가.

 

고 장준하 선생을 만나 백범사상연구소(이후 통일문제연구소로 개명)를 세우고 반독재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에 온 몸을 던져온 재야인사. 그리고 87년·92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나서고 이후 민중당 등 진보정당 창당에 이바지했던 진보진영의 큰어른.

 

꾸지람 듣고 안부부터 여쭈면서 시작한 댓거리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일 오후 서울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았을 때 선생은 원고지를 앞에 놓고 글을 쓰고 있었다. 절을 올리자 그는 "빛 많이 받으시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국화꽃잎을 띄운 차를 건넸다. 향긋했다. 선생의 뒤로는 장산곶매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가 카메라 기자에게 주문했다. "이 그림이 좋은 거니까, 최병수 그림이니까 살려봐."

 

댓거리(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늙으니 앉았다 일어나기가 불편해"라며 실제로 힘들어했지만 선생은 끝까지 꼿꼿한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칼칼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쏟아내는 '쇳소리'도 여전했다. 때로는 눈을 부릅뜨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호통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들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먼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건강하신지?'부터 물었다. 댓거리를 시작하며 어른의 안부부터 여쭙지 않았다고 혼난 적이 있다는 한 기자의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은 "몸의 건강을 묻는 거야, 정신의 건강을 묻는 거야? 아니면 아울러 묻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아울러…"라며 머뭇거렸다.

 

"우리 같은 사람은 죽기 아니면 살기야. 큰 바위가 뻐그러졌는데 틈바구니가 있거든. 거기에 두 다리를 걸쳤어. 자칫하면 빠져. 건너가야 될 텐데 건너갈 힘이 없어서 받은 거지. 그러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지 뭐."

 

- 다음 주가 설입니다. 설이 되면 많은 분이 찾아뵙는 걸로 압니다. 올해 준비한 덕담은 무엇입니까.

"한 해가 지나가면 새해에 무슨 바람, 하제…. 희망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하제'라 그러죠, 하제가 다가올 줄로 생각하는데, 지난해와 새해가 끊긴 것이 아니고 지난해의 연장이 새로운 새 아침이야. 그러니까 새해에도 지난해에 하던 일을 보다 힘차게 밀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

 

처음 만나 절을 올렸을 때 선생은 "빛 많이 받으시오"라고 말했는데, 그 뜻이 궁금했다.

 

"거의가 다 요즘 좌절·절망, 이를테면 허무주의의 늪에 빠져 있어. 빛을 줘도 못 받고 빛이 뭔지도 모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몸에서 빛을 내야 돼. 빛을 받으라는 얘기는 누가 주는 빛을 받으라는 게 아니야. 우리 몸에서 빛이 나와야 된다는 뜻이에요."

 

"권영길 표 덜 나왔다? 그렇게 생각할 것 없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백기완

-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2위와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반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득표율 3.0%에 그쳤습니다. 이 같은 국민들의 표심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지난 대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서구문물이 거침없이 밀려들어 옴에 따라 우리는 선거에 대해 무슨 희망, 하제를 거는 잘못된 버릇이 있어요. 이번 대선에서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 선거의 한갓됨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는 때박(계기)을 맞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을 해요. 대중성이란 것이 얼마나 그 실체가 애매모호 하느냐 그런 얘기도 되겠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표가 좀 덜 나왔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생각할 거 없어. 부르주아 선거라는 것이 그렇게 한갓돼. 그런데 권영길 후보가 얻은 3프로, 3부라는 거 있잖아. 그걸 이제 변혁의 실체로 만들어나갈 생각을 하면 되는 거야! 우리 국민의 3부, 3프로는 권영길을 지지했으니까 그걸 진짜 변혁의 알기, 변혁의 주체로 묶으면 온 힘을 다 변혁의 알기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된다는 그런 얘기예요."

 

- '한갓된 선거'란 무슨 뜻인가요?

"돈 선거고, 썩어 문드러진 영예의 선거고, 고향 사람 뽑는 선거고, 학벌 뽑는 선거고, 그렇다는 얘기지 뭐. 진실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얘기할 수는 없잖어! 연고에 의해서 사람을 뽑으니까 선거 자체가 한갓되다 이거지 뭐.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가~(선생은 노래를 불렀다)', 그런 노랫말도 있잖아. 덧없이 풀잎만 맺어선 안 되지. 덧없이 기대만 걸어선 안 된다는 뜻이겠어요."

 

- 투표율은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낮지만, 투표한 국민의 거의 절반 가량이 이명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그 표심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요?

"난 무시하자는 게 아냐. 대중성의 한갓됨을 얘기했고, 말을 한마디 덧붙이자면 지금 우리 시민들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어. 앞날이 보이질 않아. 앞날은 배도 좀 불러야 되고 취직도 좀 해야 되고 뜻도 좀 살려야 될 텐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 암만 선거를 해도 돈 있는 사람이 돈 내놓는 거 봤냐고! 안 내놔요. 선거 백번 해봐야 앞이 안 보이는, 거기에서 오는 좌절과 절망이 이번 선거의 결과에 있는 거야."

 

-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에선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얘기해왔습니다.

"난 그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뭘 잃어버린 걸 말을 안 해! 난 잃어버린 게 있다고 생각해. 이 땅 우리 겨레의 자주성이야. 우리 겨레가 수만 년 동안 살아온 경제자주성을 전부 미국의 독점자본한테 빼앗기고 넘겨주고 그랬어. 이건 얘기 안 하고, 뭘 잃어버렸다고 하는 거야. 이명박씨하고 그 친한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 말은 잘못됐다고 보는 거고."

 

- 선생님께선 참여정부에 대해 '민간독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 했지. 왜 이미 끝나가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민간독재라 그랬느냐. 그전엔 군사독재였거든. 노무현씨는 민간독재다. 첫째, 이라크파병 하면 안 돼. 미국의 신보수주의 세력들이 석유 때문에 남의 나라를 침략했는데, 침략전쟁의 앞잡이가 됐다는 건 뭐여? 그건 민간독재여. 두 번째로, 미국의 독점자본이 우리나라에 와서 무엇을 요구하는 겁니까. 농민을 해체하고 노동운동을 파괴하는 겁니다. 그 실상이 어떻게 드러났습니까. 거의 천만 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아닙니까. 그걸 누가 했느냐 그거야. 노무현 정권에서 했거든. 그러니까 민간독재지 뭐. 내 얘기가 논리적으로 보면 잘못됐다고 얘기하기는 좀 힘들 거야. 정서적으로 얘기하면 그래도 뭘 하려고 애썼는데…. 난 실망은 하지 않았어. 노 정권이 탄생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읽을 수가 있었거든. 아마 민간독재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돈놀이 잘되는 세상 만들겠다는데, 경제 회복될 수 있나"

 

-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에 대해 '실용정부'니 '신보수정권'이니 하는 평가들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이명박 정부가 어떠리라고 보십니까.

"옛말에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오늘에 적용할 것이면, 뭐 두고 보자 그러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명박 정권은 빤한 겁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아류가 될 거요. 실용이란 말이 뭐요? 지금 미국의 한 주로 강제적으로 편입돼 가는 남쪽의 경제적 토대를 자주적 토대 위에다 올려놔야 된다고,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이 주인이 되는 자주적 경제를 만들겠다고 나와야 될 텐데 뭐라고 얘기하는 거야. 사업 잘되고, 장사 잘되는 세상 만들겠다고? 그건 미국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반동적인 세력들의 논리를 한반도에다가 다시 강요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을 보고 실용정권이다 그렇게 말하는 건 과학성이 없다고 봐. 난 미국의 보수주의의 아류 정권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해봐요. 좀 두고 봅시다."

 

- 국민들이 이명박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 가운데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되리라고 보십니까. 특히 그 과정에서 민중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난 더 비참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제위기가 와 있다고 신문·방송에서 떠들썩한데 그 경제위기의 실체가 뭡니까. 독점금융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겁니다. 독점금융자본주의는 뭐여? 빤한 거 아녀. 돈놀입니다, 돈놀이. 생산적인 일은 안 하고 돈놀이만 하다가 망한 겁니다. 돈 꿔주고 그 돈 가지고 부동산 팔고 사고, 주식투자 하고 그러다가 망한 거 아녀. 세계경제를 쥐었다 폈다 하는 미국도 돈놀이 경제 때문에 지금 어려워지는데, 사업 잘되는 나라, 사업 잘되는 세상 만들겠다고 그러니까 돈놀이 잘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건데, 경제가 회복될 수가 없죠.

 

두 번째로는, 민간경제는 물건도 좀 팔리고 돈이 왔다 그래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 그러잖수. 그런데 우리 서민은 왔다갔다 그러려니까 돈이 있어야지. 왜 돈이 없는 거야. 비정규직이 많고, 실업자가 많아서 그런 거여. 왜 비정규직이 많고 실업자가 많느냐? 그건 국내 독점자본 위주의 경제정책만 써온 수십 년의 결과입니다. 독점자본의 진정 못쓸 건 다 해체해서 민중의 것으로 돌리겠다고 그랬을 때야 경제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그 사람들 장사 잘되게 하겠다는 경제가 잘될 턱이 있겠수. 그때 희생당하는 건 뭐요. 마지막 남은 농민 해체와 노동자 탄압이고 서민 압박입니다.

 

어제도 신문에 났대. 길거리 노점상들 다 단속하겠다고. 어떤 놈이 노점상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노점상을 만들어낸 거 아냐. 단속을 해서 체제 안으로 들어와서 세금 내고 장사해먹으라고 그래 봤댔자 또 노점상이 나오면 그 사람들은 불법이고 질서를 파괴한다고 다 감옥에 넣겠다는 거 아뇨. 서민경제를 위험한 지경으로 몰겠다는 거 아뇨. 그러면서 무슨 경제를 살리겠다는 거요. 큰 전망을 제시해야죠."

 

- 사회 양극화 현상도 더욱 깊어지리라고 보십니까.

"양극화란 건 뭐요. 자본주의의 논리입니다. 미국의 돈 많은 사람이 우리도 없는 사람들 도와주는 자본주의(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지난 1월 24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자본주의가 부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만족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장했다 - 기자), 웃기지 말어. 구라파에서 1년에 한 사람이 버는 돈이 4만 불, 5만 불 그런다는데, 아프리카에 가면 백 불 버는 사람이 드물잖아. 그리고 인종싸움이다 갈등이다 그러지만 사실상 돈의 갈등이거든. 있는 자 없는 자의 갈등이거든. 조작된 갈등이라고. 수백만 명씩 죽어나가잖아요. 양극화, 빈부격차라는 건 어디서 나왔냐. 돈이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거거든. 돈을 축적할 수 있는 잘못된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돈이 전부 보편화되도록 해야죠. 이명박씨가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서민들 죽고 빈민들 죽고 노동자·농민 죽고, 그럴 거 같아요."

 

'이명박 정부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시는 듯 싶습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생이 호통을 쳤다.

 

"왜 부정적이야! 올바른 얘기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셔야지. 요즘 신문쟁이들 정말 정신없어! 내가 뭘 부정을 했어. 일생을 난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 난 그 실체를 까발리는 것이지 부정적이 아니야. 말을 과학적으로 써야 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백기완

 

"통일부는 폐지가 아니라 개편해야... 지난 10년간 통일 실체 깨져"

 

- 얼마 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통일부를 외교부에 흡수·통합하는 데 대해 통합신당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평생 통일운동에 몸담아 오신 분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로 통일부 없애겠다는 건 잘못된 거요. 철회해야 합니다. 통일부란 것은 정부기관입니다. 우리가 통일하자고 하는 건 정부기관, 다시 말하면 냉전구조의 한 표현인 남쪽도 정부요 북쪽도 정부란 것을 없애자는 겁니다. 그런데 통일부란 것은 냉전구조의 한 소산인 기관이니까 첫판부터 잘못된 겁니다. …그러나 통일부가 생기면서 이 땅에 남아 있는 냉전논리와 냉전구조를 없애는 데 엄청난 이바지를 한 겁니다.

 

그런데 통일부가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된다, 냉전논리·냉전구조를 타파하는 데 통일부가 앞장서야 된다, 이렇게 고칠 생각을 해야지, 통일부 자체를 없앤다는 것은 이 땅을 새로운 냉전구조 속으로 집어넣겠다고 하는 만행으로 용납해선 안 된다. 진짜 통일부는 남쪽 정부의 대행기관이 아냐! 북쪽을 정책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아니라 냉전구조·분단구조에서 허우적대는 민중을 해방하는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 기구로 개편을 해야 됩니다. 발전을 시켜야 됩니다. 내 얘기가 틀렸수?"

 

- 그럼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난 빤하다고 봅니다. 이명박 후보가 그런 얘기를 하데. 자기는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겠다고. 한미(동맹)관계는 뭘 말하는 거요. 분단상황을 교착시키겠다고 하는 걸 한미(동맹)관계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 반민족적인 것을 깨겠다고 나와야 될 텐데, 한미동맹관계를 강화하겠다고 그러니까, 남북문제를 미국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논리에 따라서 볼 테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관계는 뻔하지요."

 

-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관계가 발전한 것으로 평가하시는지요?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통일이란 말을 일반적으로 쓰게는 만들었지만 사실상 통일의 실체는 깨뜨렸어요. 자, 이거 보자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뭐요. 돈놀이를 위주로 하는 미국의 금융독점자본주의 체제에 한반도를 그냥 내주자는 거 아뇨. 여기서 우리 남쪽은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된 거나 다름없는 거야. 그런데 무슨 왔다 갔다만 하면 통일이야. 통일문제를 근본적으로 그르쳐놓고는 왔다갔다만 하는 거 가지고는 안 된다 그거야.

 

내가 작년 8월 말쯤 '남북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제목을 가지고 시간을 가졌더니 내 둘레에 있는 젊은이들이 '선생님 그거 부정해야죠' 그래서, '아니다' 그랬어. 우리 민족 성원의 한 사람이라고 하면 민족문제를 갖고서 만나는 것은 천 번도 좋고 만 번도 좋아. 노무현씨 만나라 그거야. 만나서 뭘 할 것이냐, 이런 걸 해라 그랬는데, 정부 관계하는 사람들 하나도 안 왔었는지, 북쪽 가서 내가 들고 나온 얘기가 되어졌다는 말이 하나도 없데."

 

- 그 강연에서 '남북정상회담'이란 말도 '뚝샘들의 만남'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신 것으로 압니다.

"정상이 뭐야. 영어의 '서미트(summit)'를 우리말로 번역한 건데, 서미트는 정상이 아니지 꼭대기지 뭘 그래. 뭔 꼭대기야. 민중적으로 산 사람이면 아래가 어디 있고 위가 어디 있어. 그럼 뭐야? 뚝샘이야. 끊임없이 솟구치는 샘물을 뚝샘이라고 그래. 십년 가뭄에도 샘물이 솟구친다 이 말이야. 농사 잘되도록 둘레의 메마른 땅을 흥건하게 적셔. 그러니까 정상이라고 그러는 것보다도 뚝샘 그러자고 했는데, 어떤 새끼 내 말 하나 신문에 써주는 놈도 없데."

 

"무지랭이들도 화해할 줄 아는데, 세상 뒤엎자는 진보주의자들이"

 

지난 대선 이후 진보세력, 특히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동당은 평등파와 자주파 사이에서 종북주의(從北主義) 논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선생과의 댓거리 뒤인 지난 3일 임시 당대회에서 '종북주의 청산' 등을 내건 심상정 비상대책위의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당으로 치닫고 있기까지 하다. 진보세력에게 북한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선생은 "남쪽이 있고 북쪽이 있을 뿐, 냉전구조에서 나온 남한·북한이란 말을 안 쓴다"며 질문을 풀어 하나하나 '맞대'를 했다.

 

먼저 남쪽 진보세력의 위기론에 대해.

 

"남쪽 진보세력의 위기다 그러는데, 어떤 게 진보세력이냐? 사실은 가짜 진보세력의 위기야. 난 그렇게 봅니다. 두 번째로 진보라는 건 뭐야.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창조적으로 나가는 걸 진보라고 그래. 남쪽의 진보세력이 역사와 함께 앞으로 나가는 창조적인 모습으로 자기 혁신을 못 해온 위기가 아니겠느냐 이거야. 세 번째로는 '진보' '진보' 말로만 뇌까리지 말어."

 

선생은 이 대목에서 '진짜 진보'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약 20년 전 한 술자리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 무렵 "우리 둘레에서 좀 점잖은 분"이 소주를 함께 마시다가 그에게 "백범 김구 선생은 사상적으로는 보수적 아닙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해서 깊은 이해가 있었던 분은 아니었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자기 신념으로 삼은 흔적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혹시 책으로 진보가 어드렇고 역사가 어드렇고 그러는 사람들은 백범 선생에 대해서 사상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엔 백범 선생은 그런 차원의 분이 아니야. 그 양반은 사상적으로 어땠는지 몰라도 삶은 진보적이었어.

 

딱 한 가지 보기만 들께. 돌아가신 다음에 남긴 것은 고무신짝 하나 하고, 총알 맞은 두루마기 하나밖에 없었어. 다 내놓은 사람이야. 집 한 칸 없고, 땅 한 평 없고! 요새는 대통령만 해먹다 나오면 집을 엄청나게 짓는다고 그러데. 아래층에 똥둑간이 여덟 개가 있다면서. 그런 집이 전 세계에 어딨어! (백범 선생은) 그런데는 관심도 없었거든. 삶이 진보적이었다 이 말이야. 그래야 진짜 진보주의자야. 그런데 요새 우리나라에 '진보' '진보'하는 젊은이들은 진짜 진보사상을 창조적으로 반추해서 적용하려고 몸부림을 쳤느냐, 진보적인 사상을 삶으로 구현하려고 애를 썼느냐 이 말이야.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조그마한 정당에서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난 별로 관심 없고…."

 

다음 종북주의 논쟁에 대해.

 

"종북주의·친북주의 그러는데, 어디서 나온 말인지 난 몰라. 난 소주만 먹으면 북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다 울어.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거기 우리 어머니가 계시거든. 북쪽만 보면 눈물이 막 나. 누가 날 잘못 보면 종북주의라고 그러지 않겠어. 중요한 거는 진짜 창조적인 방법론으로 진보사상을 오늘에 재현하려고 애를 썼느냐 못썼느냐 그거를 따져야지 종북이다 친북이다 신문용어 갖고 얘기하는 건 답답하지 않느냐 이거야. 또 좀 꼴 보기 싫고 못되고 그랬다 하더라도 갈라서진 말았으면 좋겠어. 그럼 저 사람은 무조건 통합주의자 이럴지 모르지만 난 그런 게 아니라니까.

 

동무들하고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맘에 안 들잖아. 그럼 술 먹다 멱살 잡고 때릴 수도 있고 '개새끼' '소새끼' 하고 피를 흘릴 수 있어. 그 다음 아침에 찾아가서 어제 코 부러지지 않았어, 입술 터졌지, 미안해 인마, 술 한 잔 더 먹자, 이러는 거야. 하찮은 뒷골목 무지랭이의 우정도 이런데 하물며 세계를 혁명적으로 뒤집어엎자고 하는 진보주의자들이 뉘우치고 반성할 생각을 해야지 서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래."

 

마지막으로 북한이란 존재에 대해.

 

"진보주의자가 됐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됐든 시민들이 됐든 북쪽을 어떻게 볼 것이냐? 강요되는 냉전논리와 나름대로 몸부림치는 상처투성이의 피눈물이 고인 땅이라고 그렇게 보는 거야. 우리 어머니도 거기 계시잖아. 얼마나 냉전구조가 무시무시한 데 그래. 잡혀가 봤어? '인마, 너 어제 제물포에서 전화받았지?' '난 제물포에서 전화받은 적 없는데요' '김일성한테서 전화받지 않았어?' '난 김일성이와 전화 연결이 안 되는데요' '이 새끼가 무전으로 연락했잖아' '난 무전 다룰 줄 모르는데요' '이 새끼 아직도 덜 맞았구나', 때리는 거여. 아시겠어?"

 

북쪽 전체가 아니라 '북한정권'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다시 물었다.

 

"이거 봐. 그 얘기는 이런 시간에 묻는 것도 아니고, 그건 내가 삶으로 늘 말하고 있어. 북쪽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적성국가고 타도의 대상이거든. 그러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자는 거야. 국가보안법은 바로 전쟁도발적인 법률제도야, 없애야 된다고. 국가보안법적인 분위기를 가지고서 북쪽을 어떻게 봐야 되냐고 물으면 난 말하고 싶은 게 딱 하나밖에 없어, 국가보안법 없애야 된다, 그 말밖에 안 하갔어."

 

- 그럼 우리 시대 통일운동은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까요? 개개인들이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 좋은 거 물어봤어. 이제부터는 어떤 것이 통일이냐 하는 가장 구체적인 놀이를 할 때요. 통일만이 희망이라고 하는, 희망의 알짜(실체)를 내놔야 되는 거야. 남쪽은 미국의 한 주가 됐잖어. 노무현씨도 그랬고 이명박씨도 그렇고, 다 그렇게 만들었잖아. 그런데 무슨 통일이야. 이제부터 어떤 게 통일이냐, 그런 문제를 서로 고민하면 어떻겠느냐 그런 얘기야. 통일은 희망이야! 하제라고!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 금강산이나 가고, 백두산이나 가고. (지금) 통일 됐다고 치자 그거야. 국경이 없어졌다고 치자 그거야. 돈 많은 놈들이 금강산 가서 선녀탕에다가 별장을 지으면 거기서 오줌 똥 나와 맑은 물 다 썩을 거 아냐. 그것도 통일이야? 난 아니라고 생각해."

 

영어천재에서 우리말운동가로... "영어공교육강화는 아주 고약한 발상"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백기완

선생은 민주투사·통일운동가뿐만 아니라 우리말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대학가에서 흔히 쓰는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등의 우리말도 그에게서 비롯했다.

 

지난해엔 사람 이름과 숫자, 지명을 빼고는 순우리말로만 된 '이야기꾸림(소설)' <따끔한 한 모금>을 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젊은 시절 '영어천재'로 불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선생의 평생지기인 방동규씨는 그의 자서전 <배추가 돌아왔다>에서 선생을 만날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내 나이 열아홉, 백기완은 스물. 그 시절 백기완은 청년운동가이자, 영어 천재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인데도 영어학원 강사로 활약했고, 길 가며 영어 단어 외우느라고 전봇대에 부딪혀 코피를 줄줄 흘린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 인수위가 추진하고 있는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 때문에 나라가 들썩들썩합니다. 선생님은 젊은 시절 영어 천재로 유명했고, 지금은 우리말운동가로도 유명하신데,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잘못됐어. 아주 고약한 발상이라니까."

 

이어 선생은 "8·15 해방 고때 후야, 고때 후, 직후란 말보다는 그 말이 더 아름답지?"라며 자신이 영어 공부를 하게 된 까닭을 먼저 들려줬다. '8·15 해방 고때 후' 그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남쪽으로 내려왔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에게 축구를 함께하자고 하지 않았다. 그는 맨발이었다. 어느 날 맨발로 전차를 탔다가 소매치기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갔다. 자신은 소매치기가 아니라 "혼자 공부하는 애"라고 그러자 경찰이 "그럼 영어를 아는 대로 얘기해봐"라고 다그쳤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영어교과서를 그 자리서 다 외웠어. 영어 잘한 게 아니야. 약 오르니까 다 외운 거야. 축구선수 안 돼 학교도 못 다녀 약 오르니까 이를 악물고 외우는 거야. (경찰이) 손 내놓으래, (그리고) 나가. 영어 잘하는 거 보니까 학생이다 그거야. 그때 깨달았어. 내가 영어 공부는 하지만 영어 조금 하면 소매치기로 몰렸던 사람이 혐의가 금방 풀려나, 분명 잘못된 거 아니냐 이거야.

 

그러고 나서 공부를 좀 해가지고 17살 됐을 때는 웬만한 (영어) 소설책 잡지책 사전 없이 그냥 봤어. 그러니까 신문에 영어 좀 잘한다고 났었는데, 내 얘기는 그렇게 영어 잘했다고 해봐야 써먹을 데가 없어. 난 미국놈 앞잡인 싫으니까, 죽어도 그딴 건 안 하니까. 그런데 영어를 잘해야 잘산다고 이명박 당선자가 말했다고 신문에 나오데. 난 영어를 잘 했는데도, 천재라고 몰릴 정도로 영어를 잘 했는데도 난 잘 살아본 적 없어. 암만 영어 잘 해봐야 배고픈 건 마찬가지야. 영어를 잘못 팔아먹으면 앞잡이밖에 안 되고. 영어를 무조건 하지 말자는 게 아니야. 초등학교에서도 하고 중학교에서도 하고 고등학교에선 선생이나 학생이나 영어로 강의한다나, 안 되는 거야."

 

선생의 이야기는 2002년 축구세계대회(월드컵) 때로 이어졌다.

 

"그 때 내가 울면서 호소했어. 파이팅이란 말 쓰지 말라고. F-I-G-H-T-I-N-G(그는 알파벳을 한 자한 자 발음했다), 싸우자, 죽여라, 그런 얘기 아니야? 왜 만날 알지도 못하는 그런 말을 써. 그러지 말고 '아리아리' 그러자 그거야. 아리아리 아리랑 쓰리쓰리 쓰리랑~. 그 노래 알죠? 아리아리라는 건 없는 길은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뜻이에요. 없는 길을 찾아가자 아리아리~, 그러면 오죽 좋아. 얼마나 문화적이고 예술적이고 평화적이야. (그런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도 뭣도 모르고 파이팅이래요. 때려죽이자는 얘긴데 말이야."

 

선생은 '아리아리'처럼 '새내기' '동아리' 등 새로운 우리말을 만들어 퍼뜨리기 위해 애써 왔다. 관련해서 어린 시절 중학생들을 따라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보고 '속꽂이'라고 말했다가 중학생들에게 매를 맞은 경험을 얘기했다.

 

"그때 내 말대로 속꽂이란 말 썼으면 지금 다이빙이란 말 안 쓰고 속꽂이가 됐을 거 아니야. 재떨이가 뭐야. 애쉬트레이(ashtray) 아냐? '애쉬'는 재, '트레이'는 턴다는 거 아니야. 우리가 그때 애쉬트레이 했으면 재떨이는 없어진 거야. 말은 끊임없이 역사와 함께 빚어내는 거야. 어떤 신문에서 백기완 선생이 (말을) 만들어냈다고 뭐라 그래. 만들면 어때! 대한민국 간판 보라고 몽땅 미국말 아니야. 그래서 이명박씨가 영어 잘 하면 잘 산다 그런 말 집어치우고 지금 미국말 때문에 우리말이 다 죽어간다는 깨우침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 아무튼 정권 잡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잘해주면 나쁠 건 없잖아. 나는 때려죽이자고 반대하자 그런 게 아니잖아. 올바로 하자는 거지."

 

선생은 '달동네'란 말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했다. 50년대 초 부모 잃은 아이들을 모아 야학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마침 눈이 오고 달이 뜨니까 깨진 잿더미가 그렇게 예쁘더라고." '달동네'란 말이 떠올랐고, <달동네소식>이란 유인물을 만들어 돌렸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끌고가 거꾸로 매단 채 발로 차며 '빨갱이'로 몰았다. '너 빨갱이지!' '내가 왜 빨갱입니까?' '달동네라고 그러면 되냐 하꼬방이라고 그래야지.' '그건 왜말인데요?' '왜말 싫어하는 거 보니까 빨갱이야.' 일주일 동안 실컷 매 맞고 나왔다.

 

"그 뒤로 어떻게 된 게 달동네란 말은 요새 어느 소설 보니까 나오고 방송에서 쓰는 사람도 더러 있고 그러더라고. 우리 신경림 선생 시에는 달동네가 아니고 산동네 그랬더라고. 산동네도 좋지만 달동네가 좀 문학적이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도 해보는데, 뭐 내 말 들어? 내 말 안 들어요."

 

- '부심이'가 선생님의 덧이름(별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웹사이트와 이메일 주소도 '부심이(busimi)'로 돼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옷 이름이요. 사내새끼는 풀빛 바지에다가 빨간 대님을 매고, 빨간 저고리에다가 풀빛 고름을 맨 옷을 부심이라고 그래. 계집애는 풀빛 치마에다가 색동저고리 입은 거, 아니면 빨간 치마에다가 노란 저고리 입은 걸 부심이라고 그래. 풀빛 바지에다가 빨간 대님을 매고, 빨간 저고리에다가 풀빛 고름을 매고서, 눈이 허옇게 내린 벌판에 서면 봄이 오는 거 같아. 그 빛감으로 해서 얼어붙은 게 다 녹아내리는 거 같아. 우리 어머니가 부심이란 옷도 한 벌 해주지 않고, 내 덧이름을 부심이라고 한 것은, 왜정시대에 일본놈들이 우리를 못살게 굴어도 꽁꽁 얼어붙어도 네가 나타나면 봄이 되는 거처럼 부심이로 살거라, 그래서 부심이라고 불렀어. 부심이란 말 괜찮죠?"

 

이밖에도 선생의 우리말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파도 대신 '몰개'란 우리말을 퍼뜨리려고 애쓰지만 잘 안 된다는 얘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중앙일보>에서 '새뚝이상'을 만들었다는 얘기…. 기자에게 <오마이뉴스>가 뭐냐고 꾸짖고는 대신 '누리하제(세상의 희망)'란 새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 '모꼬지'란 말은 말뜻을 잘못 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파리를 보고도 모기를 보고도 모가지를 들이대는 걸 보고 모꼬지라고 그래. 저 새끼 순 모꼬지다 그러면 온몸으로 산다 그거야. 그런데 요새 모꼬지 그러면 대학가에서나 노동운동판에서나 회의 하러 가는 걸로 알아요. 말뜻을 잘못 써먹고 있어. 회의, 그게 아니고 온몸으로 들이대는 거 그걸 모꼬지라고 그래."

 

"대운하? 정말 나가려면 큰 바다, 큰 대륙으로 좀 나가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권우성
백기완

>- 이명박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장 중단해야 돼! 대운하가 뭐야! 얼마 전에 로서아(러시아) 놈들이 말이야. 저 북극바다 4000미터 밑에다가 로서아 깃발을 꼽고 요건 우리땅이다 그거야. 왜냐? 거기서 나오는 석유는 자기네 거다 이거야. 아이고, 정말 나가려면 큰 바다, 큰 대륙으로 좀 나가지. 요 손바닥만한 거 38선으로 갈린 것도 뭣한데, 여기서 부산까지 갈라놓고 여기서 전라도까지 갈라놓고 그러면, 어려운 말로 생태계는 다 깨지고, 그 물이 썩어. 물이 흘러야 할 데 잘못 흐르면 그게 무슨 큰물이냐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생태적으로도 그렇고, 전연 그건… 이 땅덩어리를 아주 망치는 거야. 당장 때려치워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도 조금 생각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여론들을 거둬보면 뭐 거두지 않겠어요?"

 

- 지난 대선 표심도 그렇게 읽힐 수 있는데, 사회 전체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특히 대학생들도 그렇고 젊은 층의 보수화 흐름이 눈에 띕니다.

"몇 가지 까닭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을게. 요새 젊은이들한테는 니 힘껏 경쟁에서 이겨라 이거야. 남을 죽여서라도 경쟁에서 이겨야 대학도 좋은 데 가고 취직도 한다 이거야. 경쟁만능주의를 우리에게 불러놓거든. 경쟁에서 진 놈은 희망이 없고 경쟁에서 이긴 놈은 한두 놈 취직한다 이거야. 여기서 어떤 생각이 오느냐. 아무리 올바른 생각을 하고 올바르게 노력을 하더라도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 이거야. 있는 놈이 장땡이다 그거야. 거짓말해서라도 거머쥔 놈이 장땡이다, 그런 놈들이 다 대통령 해먹고 그런 놈들이 다 재벌 아니냐 그거야. 여기서 엄청난 좌절과 절망에 빠진 거여. 좌절과 절망에 빠진 것을 (보고) 보수화됐다, 그렇게 난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들에게 희망을 줘봐. 경쟁이라고 하는 잘못된 자유주의 논리를 강요하지 말고 진짜 깨우치고 올바로만 살면 예쁘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그들의 보수성 같은 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 좌절과 절망에 빠진 시대,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혁명적 분위기가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말을 내가 수십 년 하고 다녔어. 예술이, 문화가 앞장서야 돼. 그러려면 상업지 예술성으로부터 우선 탈피해야 돼. (또) 문화를 정부에서 돕는다? 정부에서 돕는 건 어용문화고 어용예술이야. 무지랭이들이 맨 바닥에서 언 땅에서 지고 일어서는 '나네'처럼 들고 일어나야지. 제일 아름다운 여자, 예쁜 여자를 우리말로 '나네' 그러거든. 언 땅을 지고 일어서는 새싹이 나네거든. 언 땅을 지고 일어서는 가냘픈 새싹처럼 고개를 들어서 엄청난 예술운동이 일어나야 돼. 나는 벽시운동 같은 게 일어나야 되지 않느냐 이거야. 시를 이런 조그마한 하얀 종이에다가 의탁하고 기대해서 되겠어. 넓은 벽면 있잖아. 시가 밖으로 나와야 돼. 그림도 요만한 액자에다가만 그릴 생각 말고, 저 넓은 공간, 벽 있잖아. 그걸 그림의 종이로 써먹자 그거야. 진짜 삶하고 같이 있도록 만들자 말이야.

 

우리말에 진짜 멋진 사내의 팔뚝은 갯바람에 절은 밧줄 같다고 그랬어. 갯바람에 절은 밧줄이란 건 말이야 알통운동해서 이두박근 삼각근 나온 알통이 아니라고. 노동성, 생산성이 아로새겨져 있는 힘살(근육)을 갯바람에 절은 팔뚝이라고 그랬거든. 또 우리 남자의 다리는 무너지는 벼랑을 거머쥐는 솔뿌리 같다고 그랬거든. 벽에다가 이런 다리를 그려야 된다고. 돈놀이하는 놈을 우리말로 뭐라고 그래? '납쇠'라고 그래. 가장 죽일 놈, 샤일록 같은 놈을 납쇠라고 그래. 샤일록, 납쇠, 그런 놈이 아니고 언 땅을 지고 일어서는 나네와 같은, 가냘프지만 새싹과 같은 고런 예쁜 여자, 예쁜 사내, 고런 예쁜 예술운동, 문화운동을 일으켜야 된다 그거야. 왜 모든 혁명이 늪에 빠졌는데 예술은 가만히 있느냐 그거야. 왜 팔아먹으려고만 그래! 예술을 상품화하려고만 그래! 그러지 말라 그거야."

 

"통일은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일"

 

선생은 올해 두 가지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했다. 첫째는 '참된 통일은 무엇인가'하는 주제로 특강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게 통일이냐는 문제를 지금 우리가 똑똑히 헤아릴 때가 온 거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 통일부를 없애겠다는 게 아니야, 올바른 통일운동을 죽여 버리겠다는 거 아니야.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는 게 그거거든. 이럴 때 통일만이 희망이라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통일의 알짜는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거다 이거야. 노나메기는 무슨 뜻이냐. 옛날 우리들의 사회주의란 말이야.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야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 때 올바로 잘살자, 그런 말을 우리말로 노나메기 그랬거든. 벗나래는 세상이야. 벗이란 이웃이란 말이야. 이웃이 나래를 폈어. 한동네란 말이지 뭐, 세상이야.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드는 것이 통일이다 그거야,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는 것이 통일이 아니고! 이 땅별(지구)을 망치는 환경파괴물질 같은 걸 막 내버리고 자기 돈만 벌고 떵떵거리는 거,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남의 나라 주식시장을 다 망쳐먹고 자기만 잘사는 거는 올바로 잘사는 게 아니잖어.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납쇠, 돈놀이꾼을 없애야겠다 그거야. 둘째, 쫄망쇠를 없애야겠다 그거야. 먹을수록 속이 좁아지는 사람 있잖아. 먹을수록 속이 커져야 할 텐데 먹을수록 속이 좁아지는, 아주 썩어 문드러진 돈 많은 사람들 있잖아. 세 번째론 뼉쇠를 없애야 돼. 순정을 겁탈하는 놈을 뼉쇠라고 해. 약한 여자, 약한 사내를 겁탈하는 놈들 있잖아. 이 세 가지를 없애지 않으면 올바로 잘살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전통문화에 나와. 그런 특강을 좀 하고 싶고, 신청 좀 하라고 해."

 

둘째, 우리의 민중사상, 민중해방사상, 민중문화, 민중예술의 뿌리에 관한 '원형'을 빚어 읽기 쉽게 책으로 꾸며 펴낼 계획이다. 열다섯 편가량의 얘기를 엮을 생각이며, 지금 그 가운데 '버선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온몸에 걸친 것 없이 감추는 것 없이 그냥 내놓고 사는 버선발'. 노비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버선발'이 여러 일을 겪고 난 뒤 '뚱속(욕심)이 없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틀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는 얘기다. 선생은 구수한  입담으로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버선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백기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버선발 이야기' 바로가기).

 

- 이제까지 말씀에 따르면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살기가 더 어려운 시절이 될 듯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 시에 비문(碑文)이라는 시가 있어. 죽은 사람 무덤 앞에다 세워놓는 비석에 있는 글이란 말이지. '익은 낱알은 죽지 않는다 / 떨어질 뿐이다 / 산새 들새들이여 / 낱알은 물고 가되 울음은 떨구고 가시라', 그런 시가 있어. 역사라고 하는 것은 그 낱알을 누가 먹든지 끊임없이 밭을 일구고 김을 매고 물을 주고 낱알을 익히는 거야. 그게 역사여.

 

젊은이들이여, 아니면 여러 시인들이여, 우리도 누가 그 낱알을 먹든지 낱알을 익히겠다고 하는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자 그거야. 그래서 그 낱알을 이름 모를 산새 들새가 물고 가더라도, 너가 가지고 가서 먹어, 그러나 울음은 한번 울어달라, 노래나 한번 하고 가라, 그 말이야. 이런 인생관, 이런 가치관을 가지면 조금 올바른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입니다."

2008.02.08 11:28 ⓒ 2008 OhmyNews

출처 : 장산곶매 백기완
글쓴이 : 한시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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