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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이 광주를 외면하는 이유


우리는 5·18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좀 아는 체하는 것은 무지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이다. 5·18에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더러 공감하는 체하는 것은 불의하다는 말을 듣기 싫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대중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제가 가서 공부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정작 이 나라의 5·18은 외면하는 지식인들, 그들에게 프랑스혁명이나 명예혁명은 위대하지만 5·18이 전혀 위대하지 않은 것은 차라리 논리적이다. 독재에 반대하는 척하는 것으로 제가 민주주의자인 줄 아는 지식인들, 정치를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기실은 정치적인 지식인들, 이념을 백안시하는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게 이념에 종속되어 있는 지식인들, 그들의 뇌리에 광주는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5·18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도 국제적이어서 마르크스·엥겔스를 탐독하고 레닌의 행적을 쫓으며 체게바라를 즐겨 인용한다. 그들에게 윤상원, 박관현이나 송기숙 등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기실은 알려하지도 않고, 이전에 공감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5·18을 말할 때 김대중이나 ‘전라도의 한’ 따위는 빼먹지 않는다.


5·18은 신군부의 음모에 의한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 5·18의 발포 명령자는 전두환인가? 그렇다고 한다. 5·18은 미국이 방조, 조장했는가? 그렇다고 한다. 5·18 때 시신 암매장이 있었는가?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식인들이 5·18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심증은 풍문으로 희석되고, 풍문은 기껏해야 야담이나 야사로 구비될 따름이다. 역사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5·18이 정사로 기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을사오적을 규탄한다. 1905년 이 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 측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들 말이다. 그들은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 등이다. 다만 참정대신으로 끝까지 반대하다 파면된 한규설이 있었다. 그는 일본정부가 주는 작위(남작)를 거절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5·17 폭거를 의결한 국무위원들을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 국무위원은커녕 최소한 저항 없이 대통령직을 넘긴 최규하, 국무총리 신현확, 국방부장관 노재현도 거론하지 않는다. 왜? 그들과 한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규설 같은 국무위원이 없었다는 것도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

5·17 당시 정무장관을 하다가 사표도 안 내고 20일 간 병원에 몸을 숨긴 고건이 있다. 훗날 나타나 “군사정권이 싫어서 그랬다”고 말한 고건은 이후 민정당 정권에서 9년 넘게 2개의 장관직을 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여간 해서 고건을 지탄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은 위선자에게 약한 것일까? 아니 지식인들이 바로 고건 같은 위선자들이기 때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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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08시, 약속을 지킨 것은 전남대 학생 100여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 싸운 광주시민들까지 하나같이 위대했다. 광화문, 서울역에서 굳게 약속하고 헤어진 수십만의 서울학생들, 그들은 5월 18일 08시 광화문에 나가지 않았다.


지금도 심재철, 유시민, 신계륜 등은 당시 학생 시위의 지도부였다고 자처한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은 듣지 않았으면 한다. 당시 서울 거리에서 일주일 이상 지낸 나는 어떤 유인물 한 장 보지 못했고 그 누구의 연설 한 번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5월정신에 기대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그들이 5·18의 이용자 또는 수혜자임을 지적하지 않는다. 왜? 그들과 한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의 지식인들은 12·12 반란과 5·18 학살의 동시 주범인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그 아래로 황영시, 유학성, 차규헌,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왜? 한국의 지식인들은 군사파쇼집단과 한패이기 때문이다.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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