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나의 한살매) - 백기완

한시알 2016. 1. 12. 20:08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의 한살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별점7.75 | 네티즌리뷰 4건리뷰쓰기

저자 백기완|한겨레출판 |2009.09.25

페이지 479|판형 A5, 148*210mm

도서관 소장 정보 국립중앙도서관

도서 14,400원 16,000원 -10%


책소개

백기완이 노래하는 민중의 분노와 희망의 삶!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을 담은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엠비 대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한평생이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남북통일과 노동자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지만, 경제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과 악화하는 남북관계 등 작금의 세태는 단편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인생이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이었음을 증언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단어 하나, 한자어 하나 섞지 않고 순우리말만 썼다는 것이다. 직접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의 우리말을 만들어낸 저자의 역량이 집대성된 이 책 속에는 순우리말을 만들게 된 에피소드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 외에도 저자가 직접 지은 영화대본과 시, 연설문,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신화 등도 함께 실려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백기완

저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일생을 반독재, 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 혼자 공부했다. 1950년대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도시빈민운동을, 60년대엔 한일협정반대투쟁을 전개했으며, 70년대에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반유신 투쟁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되기도 했고, 80년대엔 전두환 정권 밑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며 감옥살이를 했다.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민주세력을 통합하여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분단ㆍ부패 세력을 없애고자 했다. 


요즈음은 우리 겨레의 이야기 속에 숨 쉬는 민족문화와 민중문화를 끄집어내 새롭게 창작하는 일과 우리말 살려 쓰기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다듬고 '통일의 알짜는 노나메기'라는 나름의 철학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항일 민족론》, 《백범어록》(편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외에 수필집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장산곶매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우리 겨레 위대한 이야기》,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 《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 놈 아니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부심이의 엄마생각》이 있고, 시집 《이제 때는 왔다》, 《젊은 날》, 《백두산 천지》, 《아! 나에게도》와 영화극본 《대륙》, 《단돈 만원》, 《쾌지나 칭칭 나네》가 있다.


목차

1장새벽은 한살매 어둠 속을 걷는 이의 발끝에서 열린다 

내 한살매(일생)를 매겨온 새김말 

아주마루로(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소꿉동무 

내가 맨 처음 배운 노래는 

나를 키운 것은 글묵(책)이 아니라 한 가닥 옛이야기였다 

내가 겪은 8.15 


2장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서울서 내가 바구(필요)한 거, 그건 주먹이었다 

‘네놈들이 나가야지’ 그랬어야지 

아, 해방된 역마차 

내 눈을 틔워준 스승, 가대기 언니 

아, 썽풀이 춤 

눈물의 주먹 

내가 일으킨 세딱(세 가지)싸움 

릴케를 찾아 헤맨 한 해 

나에게 한숨을 가르쳐준 어린 알맥이(노동자) 

내가 뵌 백범 선생 


3장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내가 겪은 6.25 

누가 떵이(천재)일까 

내가 처음으로 해치운 못된 미따꾼(미군) 

찢어진 집안, 찢어진 살덩이 

달동네라는 말 한마디 썼다고 매다는 나라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할 바발(작품)이란 

백기완이,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젊어 한때 내가 치켜든 말뜸 

아, 그 가시나 어딘가 살아만 있다면 

이 강산 봄 새뜸(소식)을 글월(편지)로 쓰자 

달거지 


4장저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내가 저치(장가) 가던 이야기 

저치도 못 가보고 죽을 뻔했던 이야기 

첫딸 

우리 세 언애(형제) 

내가 겪은 4달 불쌈(4월 혁명) 

갈매기 바다 위에 날지 말아요 

널마(대륙)의 술꾼 이야기 

얼마나 눈물 바닥을 바싹 더 말려야 

흘떼(강물)는 뛰어드는 데가 아니라 저어가는 데라니까 

찬굿(영화)으로 꾸미려던 어린 엿장수 이야기 


5장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통일문제연구소의 맨 처음 집데(주소) 

마흔다섯 해 앞서와 똑같은 목소리로 

젊은이들이여! 어디선가 그대들 부르는 소리 안 들리는가 

쇳소리 

굴대솔(방송인)이 될 뻔했던 이야기 

꽁치통조림 

아, 참말로 사람이 없구나 


6장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마라 

목숨을 건 싸움, 유신 깨트리기 

항일민족 글나(문학)의 밤 

찬굿(영화) 〈포도의 계절〉 

장준하, 그는 누구던가 

나와 문익환 목사 

쩨쩨한 짜나리가 거머쥔 나라 

파리새끼한테 띄운 글월 

때속(감옥)에서 만난 김지하 

녹슬은 기찻길 

이 개망나니 새끼들아 


7장딱 한술 깨져 천해를 산다는 것 

러시아 어느 찰니(시인)한테 띄우던 글월 

딸들의 일어남 

벗이여 일어나라 

살다보니 만났다 멀어져간 사람들 

아, 천해 만에 온 때활(기회)을 잃었구나 

남북정치협상회의, 거기서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목꽂이와 곧은목지 


8장나는 늙지 않겠다 

노녘(북쪽) 누님께 띄우는 글월 

돌빔 이야기 

죽어서도 사는 삶 

퉁차기(축구) 온골(세계) 큰잔치와 나 

내 찬굿글묵(영화극본) 쾌지나 칭칭 나네 

이 딱선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한나(통일), 그날 노래마당(음악회)이야기 

하얀 종이배 

나 혼자 웅질 대는 안간 소리, ‘비나리’


[예스24 제공]

목차 닫기

출판사 서평

일생을 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수많은 우리말들의 원작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으로 투쟁했던 민중대표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 백기완 선생의 한살매(일생)를 정리한 자서전이 나왔다. 민주화의 여명이 움트기 전 대한민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기록이다.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엠비 대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고 맹세했던 자신의 시처럼, 굴곡진 현대사의 무대 한켠에는 항상 스포트라이트와 상관없이 굳건히 버티고 선 ‘민중대표’ 백기완이 있었다. 미련할 정도로 타협과 한숨을 모르는 그 성정은 어떤 고비에도 휘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삶은 평생 옥살이와 가택연금, 고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누비는 이 땅의 거리 곳곳에는 그의 한숨과 절망과 피와 땀이 멍에처럼 새겨져 있다. 

직접 ‘재야’라는 말을 만들고,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서서 비바람, 눈보라를 맨몸으로 맞으며 고집스럽게 ‘해방통일’을 위한 싸움꾼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그의 회고록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들


그는 자신의 한평생이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남북통일과 노동자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지만, 경제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과 악화하는 남북관계 등 작금의 세태는 단편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한평생 어두운 곳에서 투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와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는 반 발짝씩이나마 진일보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인생은 한마디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이었음을 우리 시대는 증언한다. 그리고 2009년, 거침없이 뒷걸음질하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이 시대는 또다시 누군가의 ‘실패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절망과 좌절과 패배의 기억들이다. 어미를 찾아 기꺼이 어둠 속을 찾아드는 반딧불이처럼, 그는 여생도 기꺼이 실패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겠노라 다짐한다. “백술(백 번)을 달구름(세월)에 깎여도 기완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라는 자신의 시처럼, ‘철들 줄 모르는’ 거리의 싸움꾼은 오늘도 용산참사 현장으로, 쌍용차 투쟁현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순우리말로 쓴 최초의 자서전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단어 하나, 한자어 하나 섞지 않고 순우리말만 썼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늙기를 거부하는’ 그다운 시도라고 할 만하다. 그 결과 시인이면서 직접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의 우리말을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이 집대성된 자서전이 탄생했다.

혹자는 직접 만들어낸 낱말과 어린 시절 들었던 사투리로 구성된 리드미컬한 구어체 문장들로 이어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이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순우리말을 만들게 된 에피소드들도 소개돼 있다. 한 예로 달동네라는 단어는 육이오 때 관악산 사당동 산자락에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모아 ‘달동네 학교’라고 썼던 데서 연유한다. “비록 다 타버린 잿더미이지만 그 위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마침 달이 뜨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달동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 외에 본인이 직접 지은 영화대본과 시, 연설문,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신화 등이 섞여 있어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추천의 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크게 공헌한 백기완 선생은 그에 못지않게 우리 문화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가령 이 분야에서 바른 길잡이로서 그가 한 몫은 아무리 높이 쳐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회고록은 제국주의와 외래문명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얼마나 심하게 일그러트리고 더럽혔는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한다. 이 회고록에 담긴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 엄숙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경림(시인) 


백기완 선생의 삶은 책 제목 그대로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산 민중의 삶, 민중 속의 삶, 민중의 분노와 희망을 노래한 삶이다.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어린 시절,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처럼 산 젊은 시절,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친 장년 시절, 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다시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나서고 있는 노년 시절까지, 그 삶의 전모가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지닌 의미를 일깨우는 들불 같은 얘기들이다.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떠올리기만 해도 정신 번쩍 든다고 하는 백 선생. 그러나 이 책으로 만나보니 선생은 한 방울 이슬 같았다. 그러다가 그 이슬 한 구석에 쭈그린 짐승의 생명력 같은 패기, 쪽빛처럼 맑은 생각들, 들이대는 해방의 정서, 그 희망에 놀라 나는 소릴 질렀다. 이건 찬비다. 

착하게 살고자 해도 좌절과 절망만 강요받고 있는 서민들, 분노의 노동자, 농민, 일천만 비정규직이 함께 젖어야 할 찬비라, 비키다니 한 방울인들 놓칠세라, 우리 팔을 벌리자. -단병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닫기

책속으로

1986해이던가. 그 첫딸이 커갖고 모배울(대학) 선생을 하다가 알맥거리(노동운동)에 뛰어들고 그로 말미암아 전두환이 놈이 "잡으라"고 해서 냅다 달아나게 되었다.

마침 나도 '권양 성고문 진상폭로대회'를 이끌었다고 해서 날 잡으러 왔다. '어림없지'하고 냅다 달아나 떠돌던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을 적이다. 깃줄대(전봇대)에 우리 첫 딸애의 곧울(사진)이 붙어 있질 않는가. '백원담이 보는대로 잡아들이라'는 으름장과 함께.

나는 북 하고 찢어 몰개(파도) 치는 바다에 던져버리며 갸의 어릴적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엄마 따라가겠다고 아무리 울어도 아니 안아주던 내가 이제는 갸의 곧울마저 바다에 던지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써물댔다(근질댔다). 188


살아보니 생각은 고요한 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조용할 수가 없더라. 날마다 썩어문드러진 톡(독) 꼬챙이가 덤터기처럼 날아드는데 어찌 가만히 앉았겠는가. 

보라, 바다가 저리 일렁이는 건 

밑물이 윗물을 뒤집는 물살이지

꺠비(신)의 노름(조화)이 아니고야

보라, 가랑닢들이 저리 곤두박질치는 건

물위에 떠있는 것들의 끝장이지

바다가 꺼지는 게 아니라니까 457


이 늙은 나이에도 주먹을 쥐어보지만 아, 나에게 서울이라는 데는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닥치는 대로 들이 붙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50


나도 내 뼈를 갉아 애나무로 삼고, 내 피땀을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온통 불을 지른, 젊은 한떄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날에 마주해 요만큼도 뉘우침 따위는 안 한다. 도리어 모이면 으르고 뽑아대고 뜨거운 것이 빛나던, 그런 젊은 날의 눈물이 있었다. 이 새끼들아. 142


정부에서 한다는 소리가 뭐야. 컹컹 개 짖는 소리밖에 더 냈어. 그러니까 정부라고 하면 되겠어? 개 짖듯 컹컹 짖는 '컹대' 그래야지... 264


[알라딘 제공]

추천평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반MB 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목차

1장새벽은 한살매 어둠 속을 걷는 이의 발끝에서 열린다 

내 한살매(일생)를 매겨온 새김말 

아주마루로(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소꿉동무 

내가 맨 처음 배운 노래는 

나를 키운 것은 글묵(책)이 아니라 한 가닥 옛이야기였다 

내가 겪은 8.15 


2장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서울서 내가 바구(필요)한 거, 그건 주먹이었다 

‘네놈들이 나가야지’ 그랬어야지 

아, 해방된 역마차 

내 눈을 틔워준 스승, 가대기 언니 

아, 썽풀이 춤 

눈물의 주먹 

내가 일으킨 세딱(세 가지)싸움 

릴케를 찾아 헤맨 한 해 

나에게 한숨을 가르쳐준 어린 알맥이(노동자) 

내가 뵌 백범 선생 


3장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내가 겪은 6.25 

누가 떵이(천재)일까 

내가 처음으로 해치운 못된 미따꾼(미군) 

찢어진 집안, 찢어진 살덩이 

달동네라는 말 한마디 썼다고 매다는 나라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할 바발(작품)이란 

백기완이, 너도 젊은 한때가 있었던가 

젊어 한때 내가 치켜든 말뜸 

아, 그 가시나 어딘가 살아만 있다면 

이 강산 봄 새뜸(소식)을 글월(편지)로 쓰자 

달거지 


4장저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내가 저치(장가) 가던 이야기 

저치도 못 가보고 죽을 뻔했던 이야기 

첫딸 

우리 세 언애(형제) 

내가 겪은 4달 불쌈(4월 혁명) 

갈매기 바다 위에 날지 말아요 

널마(대륙)의 술꾼 이야기 

얼마나 눈물 바닥을 바싹 더 말려야 

흘떼(강물)는 뛰어드는 데가 아니라 저어가는 데라니까 

찬굿(영화)으로 꾸미려던 어린 엿장수 이야기 


5장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통일문제연구소의 맨 처음 집데(주소) 

마흔다섯 해 앞서와 똑같은 목소리로 

젊은이들이여! 어디선가 그대들 부르는 소리 안 들리는가 

쇳소리 

굴대솔(방송인)이 될 뻔했던 이야기 

꽁치통조림 

아, 참말로 사람이 없구나 


6장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마라 

목숨을 건 싸움, 유신 깨트리기 

항일민족 글나(문학)의 밤 

찬굿(영화) 〈포도의 계절〉 

장준하, 그는 누구던가 

나와 문익환 목사 

쩨쩨한 짜나리가 거머쥔 나라 

파리새끼한테 띄운 글월 

때속(감옥)에서 만난 김지하 

녹슬은 기찻길 

이 개망나니 새끼들아 


7장딱 한술 깨져 천해를 산다는 것 

러시아 어느 찰니(시인)한테 띄우던 글월 

딸들의 일어남 

벗이여 일어나라 

살다보니 만났다 멀어져간 사람들 

아, 천해 만에 온 때활(기회)을 잃었구나 

남북정치협상회의, 거기서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목꽂이와 곧은목지 


8장나는 늙지 않겠다 

노녘(북쪽) 누님께 띄우는 글월 

돌빔 이야기 

죽어서도 사는 삶 

퉁차기(축구) 온골(세계) 큰잔치와 나 

내 찬굿글묵(영화극본) 쾌지나 칭칭 나네 

이 딱선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한나(통일), 그날 노래마당(음악회)이야기 

하얀 종이배 

나 혼자 웅질 대는 안간 소리, ‘비나리’


[예스24 제공]

목차 닫기

출판사 서평

일생을 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수많은 우리말들의 원작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으로 투쟁했던 민중대표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 백기완 선생의 한살매(일생)를 정리한 자서전이 나왔다. 민주화의 여명이 움트기 전 대한민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기록이다.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엠비 대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고 맹세했던 자신의 시처럼, 굴곡진 현대사의 무대 한켠에는 항상 스포트라이트와 상관없이 굳건히 버티고 선 ‘민중대표’ 백기완이 있었다. 미련할 정도로 타협과 한숨을 모르는 그 성정은 어떤 고비에도 휘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삶은 평생 옥살이와 가택연금, 고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누비는 이 땅의 거리 곳곳에는 그의 한숨과 절망과 피와 땀이 멍에처럼 새겨져 있다. 

직접 ‘재야’라는 말을 만들고,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서서 비바람, 눈보라를 맨몸으로 맞으며 고집스럽게 ‘해방통일’을 위한 싸움꾼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그의 회고록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들


그는 자신의 한평생이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남북통일과 노동자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지만, 경제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과 악화하는 남북관계 등 작금의 세태는 단편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한평생 어두운 곳에서 투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와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는 반 발짝씩이나마 진일보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인생은 한마디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이었음을 우리 시대는 증언한다. 그리고 2009년, 거침없이 뒷걸음질하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이 시대는 또다시 누군가의 ‘실패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절망과 좌절과 패배의 기억들이다. 어미를 찾아 기꺼이 어둠 속을 찾아드는 반딧불이처럼, 그는 여생도 기꺼이 실패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겠노라 다짐한다. “백술(백 번)을 달구름(세월)에 깎여도 기완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라는 자신의 시처럼, ‘철들 줄 모르는’ 거리의 싸움꾼은 오늘도 용산참사 현장으로, 쌍용차 투쟁현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순우리말로 쓴 최초의 자서전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단어 하나, 한자어 하나 섞지 않고 순우리말만 썼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늙기를 거부하는’ 그다운 시도라고 할 만하다. 그 결과 시인이면서 직접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의 우리말을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이 집대성된 자서전이 탄생했다.

혹자는 직접 만들어낸 낱말과 어린 시절 들었던 사투리로 구성된 리드미컬한 구어체 문장들로 이어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이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순우리말을 만들게 된 에피소드들도 소개돼 있다. 한 예로 달동네라는 단어는 육이오 때 관악산 사당동 산자락에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모아 ‘달동네 학교’라고 썼던 데서 연유한다. “비록 다 타버린 잿더미이지만 그 위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마침 달이 뜨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달동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 외에 본인이 직접 지은 영화대본과 시, 연설문,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신화 등이 섞여 있어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추천의 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크게 공헌한 백기완 선생은 그에 못지않게 우리 문화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가령 이 분야에서 바른 길잡이로서 그가 한 몫은 아무리 높이 쳐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회고록은 제국주의와 외래문명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얼마나 심하게 일그러트리고 더럽혔는가를 새삼스럽게 알게 한다. 이 회고록에 담긴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 엄숙하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경림(시인) 


백기완 선생의 삶은 책 제목 그대로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산 민중의 삶, 민중 속의 삶, 민중의 분노와 희망을 노래한 삶이다.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어린 시절,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처럼 산 젊은 시절, “산 자여 따르라”고 외친 장년 시절, 길을 잃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다시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나서고 있는 노년 시절까지, 그 삶의 전모가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지닌 의미를 일깨우는 들불 같은 얘기들이다.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떠올리기만 해도 정신 번쩍 든다고 하는 백 선생. 그러나 이 책으로 만나보니 선생은 한 방울 이슬 같았다. 그러다가 그 이슬 한 구석에 쭈그린 짐승의 생명력 같은 패기, 쪽빛처럼 맑은 생각들, 들이대는 해방의 정서, 그 희망에 놀라 나는 소릴 질렀다. 이건 찬비다. 

착하게 살고자 해도 좌절과 절망만 강요받고 있는 서민들, 분노의 노동자, 농민, 일천만 비정규직이 함께 젖어야 할 찬비라, 비키다니 한 방울인들 놓칠세라, 우리 팔을 벌리자. -단병호(전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출판사 서평 닫기

책속으로

1986해이던가. 그 첫딸이 커갖고 모배울(대학) 선생을 하다가 알맥거리(노동운동)에 뛰어들고 그로 말미암아 전두환이 놈이 "잡으라"고 해서 냅다 달아나게 되었다.

마침 나도 '권양 성고문 진상폭로대회'를 이끌었다고 해서 날 잡으러 왔다. '어림없지'하고 냅다 달아나 떠돌던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을 적이다. 깃줄대(전봇대)에 우리 첫 딸애의 곧울(사진)이 붙어 있질 않는가. '백원담이 보는대로 잡아들이라'는 으름장과 함께.

나는 북 하고 찢어 몰개(파도) 치는 바다에 던져버리며 갸의 어릴적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엄마 따라가겠다고 아무리 울어도 아니 안아주던 내가 이제는 갸의 곧울마저 바다에 던지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써물댔다(근질댔다). 188


살아보니 생각은 고요한 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조용할 수가 없더라. 날마다 썩어문드러진 톡(독) 꼬챙이가 덤터기처럼 날아드는데 어찌 가만히 앉았겠는가. 

보라, 바다가 저리 일렁이는 건 

밑물이 윗물을 뒤집는 물살이지

꺠비(신)의 노름(조화)이 아니고야

보라, 가랑닢들이 저리 곤두박질치는 건

물위에 떠있는 것들의 끝장이지

바다가 꺼지는 게 아니라니까 457


이 늙은 나이에도 주먹을 쥐어보지만 아, 나에게 서울이라는 데는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닥치는 대로 들이 붙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50


나도 내 뼈를 갉아 애나무로 삼고, 내 피땀을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온통 불을 지른, 젊은 한떄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날에 마주해 요만큼도 뉘우침 따위는 안 한다. 도리어 모이면 으르고 뽑아대고 뜨거운 것이 빛나던, 그런 젊은 날의 눈물이 있었다. 이 새끼들아. 142


정부에서 한다는 소리가 뭐야. 컹컹 개 짖는 소리밖에 더 냈어. 그러니까 정부라고 하면 되겠어? 개 짖듯 컹컹 짖는 '컹대' 그래야지... 264


[알라딘 제공]

추천평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반MB 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저자와의 대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백기완-


-메모한 것-

-한일합방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 4.19혁명 50년, 5.18광주항쟁 30년이 되는 2010년.

-‘댓거리’는 대화는 다른 말이다. 서로 다른 뜻을 주고 받는 것. 그리하여 공통점을 찾아가는 행위. 자기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행위.

-두루마리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입는 옷이다. 일하러 갈 때는 입지 않는다. 고로 강연장에는 두루마리를 입지 않는다.

-분단의 정의는 침략이다. 분단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으므로.

-국가주의적으로 분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분단에 대해서 얘기하는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 정치인이 없었다.

-현재의 한국인들은 분단된 조국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허무주의의 사생아들이나 마찬가지다.

-60년 동안 허무주의 의식을 주입 받았다.

-호텔=큰여관.

-자신이 겪어온 7~8명의 대통령의 악덕을 모두 합쳐도 MB의 악덕을 넘어설 수 없다.

-8.15 독립은 독립투사들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약간 거든 것 뿐이다.

-“싸움은 있는 놈, 나쁜놈 하고 하는 거야”라고 일깨워준 가대기를 위한 새긴돌을 서울역 근처 3평의 땅을 구입해서 만들고 싶다.

-우리는 역사 허무주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질의응답-

Q.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A. MB 때문에라도 건강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하는 운동은 걷기가 유일하다.

Q. 선생이 말한 허무주의의 의미는?

A. 분단으로 우리의 실체가 없어졌다.


-후기-

  일갈하는 선생님과 노래 부르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일갈하기와 노래 부르기 사이에서 선생님은 8.15 광복이후부터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분단으로 인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민족의 아픔과 분단이 침략의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평생을 재야에서 활동해온 선생님의 목소리와 행동에는 강연 내내 힘이 넘쳐났다. 80년대 겪은 모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한 선생님의 몸상태를 책을 읽어서 알고 있던 터라 조금은 기력이 약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직접 만나 뵌 선생님은 건강해 보였다.


  이 시대에는 아이들을 제대로 꾸짖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줄 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종종 한다.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강연 중에 종종 정치인-주로 대통령이였다-, 지식인, 젊은이, 종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꾸짖었다. 정말 정신이 내 머리와 몸에서 잠시 분리하려고 할 찰라에 예고없이 찬 물 세례를 받은 것 마냥 정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내 머리와 내 몸에 쏙 들어앉히게 할 정도로 날 선 꾸짖음이었다. 완만하지 않은 시대를 거칠게 살아온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얌전할 수 없었다.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시대를 온 몸을 바쳐 건너온 사람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에너지가 선생님의 몸에는 넘쳐 흘렀다.


  강연 중에 노래 세 곡을 들려주었다. 노래교실 강좌가 아닌 다음에야, 강연 중에 노래를 부르는 강사는 잘 없는데, 선생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감정에 도취되어 눈 감고 노래를 부른다. 다행스럽게도 은근히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는 덕에 짧게나마 선생님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고집스럽게 보이는 눈매와 목소리와는 달리 노래 부를 때 선생님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세상을 꾸짖을 때와는 많이 달라 보이는 노래 부르는 선생님. 세상을 꾸짖을 수 있는 에너지는 아마도 언제 어느때든 노래 부를 수 있는 선생님이 갖고 있는 감성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선생님을 뵙고 나니 “많이 느끼는 자가 많은 것을 꾸짖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느끼는 게 없으면 -분노- 분노를 표출할 일도 없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 대해서 분노할 게 많은 사람은 세상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좋은 게 좋다 라는 식의 의식은 결국에 가서는 좋은게 나쁜 것이 된다 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민주주의 아닌 독재의 시대를 산 선생님의 경우가 특히나 그러하다. 독재나 폭력 앞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좋은 게 좋다 라는 말은 갈등 없음을 조장한다. 갈등없는 사회를 -획일적인 사회- 구현하려는 이들은 대화나 타협이 아닌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해서 일사불란함만 강조하려는 독재자들이나 반민주주의자들이다. 그런 사회로 가기 위해서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로 사람들을 은근하게 위협하고, 안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좋은 게 좋은 경우란 쉽게 경험하기 힘들다. 방청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귀찮은 일은 하지 않는게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방청소를 안 하는 건 좋은 일이다. 좋은 게 좋은 일이 되는 거다. 이런 논리로 좋은 게 좋다 라는 말이 사용되면 곤란하다. 조그마한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청소라는 귀찮은 일을-좋아할 수 없는 일- 제때제때 해줘야 하는 판에, 나라와 사회라는 거대한 방을 깨끗하게 -적어도 일주일 전 보다 더 더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유지하려면 결코 좋은 게 좋다 가 될 수는 없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은 다 함께 게을러지자 라는 주문과도 같은 말일 수도 있다.


  선생님은 반평생 가까이 ‘통일’과 ‘분단’를 생각하며 살아온 분이시다. 선생님과 같이 북한이 고향이면서 연배도 비슷한 리영희 선생님은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타협하고 그래서 한 발 빠지고 또 빠지다보면 결국 타락하고 말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여지껏 재야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타협할 수 없는 주관을 가졌다는 것. 대화 아닌 댓거리를 통한 의견조율을 꾸준히 해왔던 이유로 선생님은 제도권 정치에 몸담지 않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댓거리를 상대방과 하다 보면 반평생 선생님이 지켜오고 있던 가치관이나 원칙을 수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협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나 협상이 아닌 자기 주장을 먼저 대차게 앞세우는 댓거리는 대화 상대자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물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타협안에 수긍할 수는 없다는 선생님의 생각은 그릇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협을 잘 할 수 있는 게 미덕이라지만, 둘 다 만족스러운 타협이 되지 않을 바에야 자기의 원칙을 지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타협의 시대에 타협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선생의 그 대쪽 같은 신념이 참 좋다. 분단은 침략이라고 정의하는 선생님에게는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싶다. 침략 받고 있는 지금을 독립된 나라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일보사에 계시면서 ‘북괴’를 ‘북한’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제는 ‘북한’이라는 말도 ‘조선’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21세기에는 바꿔야 하는 거짓말>에서 김형덕이 한 말을 접하고 하게 된다. “전 ‘북한’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조선’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유엔에서 조선이라고 인정했는데, 왜 북한이라고 합니까?” 한국은 한국, 혹은 대한민국으로, 조선은 조선으로 불려져야 맞지 않을까 싶다. 남한, 북한은 남과 북이 분리되었다는 사실만을 말해줄 뿐이다. 마지막으로 조한혜정이 정의하는 통일의 의미를 옮겨본다. “통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