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빛사랑채

[스크랩] 한해배웅

한시알 2005. 12. 19. 13:54
    또 눈이 오네요. 올 해배웅1)은 무르익어가는 겨울맛입니다. 이젠 눈이 많이 와도 '풍년이 올라나'하는 말맛도 없어지것지요. 한때 길사람2)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나는 이맘때만 되면 방안에 앉아 자판을 또두락거릴 수 있는 오늘이 너무 다행스럽고 복에 겹습니다. 어느 누가 길사람을 꿈꾸거나 염두에 두겠습니까만은 사람마다 아픈 구석은 다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요. 그래서 전 늘 겨울만 오면 길사람 아픔을 생각합니다. 옛날 말에도 '없는 사람 지내기엔 여름이 낫다.'라듯이 지금 내리는 눈발이 없는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한숨거리겠지요. 눈발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생각할 수 있음. 그것만으로 우린 이 땅에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삶의 포실스럼을, 그 오붓함을 가슴속 깊이 느낀답니다. 추운 사람이 없고, 배곯는 사람이 없고 폭력과 전쟁으로 상처가진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세상은 몇몇 잡아먹을 것을 노리는 사나운 짐승들이 있어 풀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 풀내기3)조차 그냥 살아가게 내버려두지 않네요. 제땅에서 씨갈이만 하게 해달라는 농투성/산이들 제힘으로 정당하게 벌어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품팔이꾼들 아무 까닭 모르고 포탄과 살육의 현장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락사람들. 송년도 아니고 더더우기 망년은 더욱 아닌 우리의 한해배웅은 이렇게 아픈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혀를 날름거리며 애들이나 없는 이들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자본과 권력의 음흉함은, 금융자본주의의 더러운 똥물은... 해밑거리를 으스스 스산 거득 번쩍임만으로 채워 놓고 있습니다. 좀 더 따뜻한 세상을 품어왔던 젊은 이방인은 가위시렁5)에 못질 당할 때 이런 걸 꿈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권력의 하나로 자리잡아 사람을 사람답게 살기 어렵게 하는... 그를 추억하거나 팔아먹는 모든 인간들이 보다 더 따뜻해지길 빕니다. 세상은 따뜻하지만도 않고 또 아름답지만도 않습니다. 아니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부딪치고 다치는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아프게 하지는 말자.'라는 가장 본디스런 가엾썽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차갑지만도 더럽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올 한해배웅은 본디스런 우리의 4)가엾썽-사람을 가엾게 보는 마음-으로 매듭지을까 합니다. 12월 한해의 매듭달에, 해배웅달에... 4338해 해배웅달 열여드레에... 바랄바치 한시알 아리아리~ 한시알 덧글... 1)해배웅 - 한해를 보냄/배웅함. 2)길사람 - 길에서 지내는 사람. 노숙자. 3)풀내기 - 풀을 먹는 사람, 채식주의자?, 여간내기,풋내기,서울내기, 4)가엾썽/가엽썽 - 가엾/엽(말뿌리) + 썽 = 가여워할 줄 아는 마음. -연민지심.귀염썽, 썽풀이. 5)가위시렁 - 십자가
출처 : 장산곶매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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