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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노래패 '꽃다지'. 이번 콘서트는 10주년 기념공연으로 14, 15일 양일간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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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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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의 세상길, 가파르긴 해도 오르지 못할 세상은 아니지. 언덕길 비추는 저 하늘 별빛처럼 그렇게 살며시 세상을 밝혀야지." ('언덕길' 중)
9월 12일 오후 7시, 꽃다지는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익숙한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고 몸짓을 하는 풍경. 모레(14일)면 이들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10주년 콘서트라고 했나? 참 오래도 했다. 연습실에는 30여명의 꽃다지 식구들이 있었다. 현역 가수, 밴드 뿐 아니라 10년 전, 5년 전 꽃다지라는 이름으로 희망의 노래를 부르던 얼굴들이 다시 모였다. 시간이 흐른 기색도 없이 사람들의 노래는 맑고 곱다.
아름다운 화음에 혹 흠집이라도 날까봐 절로 따라나오는 노래를 애써 참고 있는데 기자의 노력도 보람없이 연습실 안으로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꽃다지를 거쳐간 여성멤버들이 낳은 '리틀 꽃다지'들. 개구진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연습실을 헤집고 뛰어다니는데도 음악감독 유인혁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거두지 않는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의견을 쏟아냈다.
"이 부분은 그냥 피아노로만 가죠?"
"이번 '동지'의 생명은 경쾌함이라고 생각해."
"마지막에 손동작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사람들은 진지하고 차분하게 한 걸음씩 노래를 지어나갔다.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연습에 모두 지쳤을텐데 노래에 취한 기자는 미안하게도 '한 시간 더 연습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민중가요 '틀' 깨고 사람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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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연출 조민하씨. 관객들에게 "뒤풀이 자리에선 꼭 민중가요를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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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총연출을 맡은 조민하씨는 "이번 콘서트를 통해 민중가요의 폭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꽃다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이번 콘서트는 '이 노래 참 좋았어'라는 선배 멤버들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보다 현역 멤버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보여주는 데 더 중점을 둔다. 초기의 '투쟁가'를 기대하고 오는 관객도 있겠지만 예전 노래들도 과감히 현대적으로 해석해 더 세련된 사운드로 구성했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꽃다지 선후배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올해 초만 해도 과연 10주년 콘서트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멤버들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꽃다지 활동 자체가 불안정했던 때였다. 선배들이 먼저 동을 떴다. 작든 크든 함께 해보자고, 다시 한 번 가보자고.
그런데 막상 콘서트를 이틀 남긴 지금, 꽃다지 전·현역 멤버들은 자꾸 욕심이 생긴다. 200~300곡을 모아 35곡을 추렸는데 더 많은 노래를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부터 아쉽다. 베스트 앨범을 내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 다른 노래운동단체를 모아 다양한 민중가요를 함께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세상이 그대로인데 노래가 변할 수 있나"
김애영 초대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콘서트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농담도 그런 농담은 안했다"고 말했다. 10년 뒤를 생각하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던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현장에 서지만 그 무렵은 꽃다지가 뛰어다닐 현장이 더 많았다. 매일매일 집회에 나가 노래를 불렀고 끊임없이 곡을 창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매니저 정인섭씨는 "꽃다지의 10년 역사는 꽃다지만의 역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15년 노래운동에서 꽃다지가 늘 새로운 역사를 써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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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을 마친 꽃다지 멤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줄기차게 연습을 방해(?)하던 '리틀 꽃다지'도 함께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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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94년 꽃다지의 합법음반 발매는 심의 저항에 한 획을 그었고 96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던 이은진 전 꽃다지 대표의 석방은 노래운동 전체의 승리였다.
그동안 김호철, 조민하, 윤민석, 김성민, 유인혁, 류금신, 이정열, 서기상 등 굵직굵직한 민중음악가들이 꽃다지를 거쳐갔다.
물론 그 동안 해체의 위기도 수없이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다지가 10년을 버틴 이유는? 멤버들은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 그 믿음을 버릴 수 없으니까"라고 답한다.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벌써 노래를 그칠 수는 없다는 게 꽃다지가 살아남아야 할 명분이다.
"이번 주말 신촌은 민중가요의 밤"
연출 조민하씨는 "콘서트에 오는 관객들이 노래를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어린이부터 50대까지 범세대적으로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노래도 많다. 꽃다지의 희망노래를 편하게 가슴으로 녹였으면 한다는 게 조씨의 부탁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문.
"콘서트를 보고 난 관객들이 뒤풀이를 하면서 돌아가며 민중가요를 불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신촌 일대에 '민중가요의 밤'이 펼쳐지잖아요."
아직도 희망을 들려주는 사람들, 이들의 노래가 밤새 이어지기를, 그래서 노래운동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를 함께 바래본다.
권박효원/남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