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빛사랑채

[풀의노래]개망초꽃 - 정호승

한시알 2005. 9. 9. 00:56
개망초꽃 - 정호승/누구의 노랜지?
    바랄바치 한시알 아리아리~

      개망초꽃 - 정호승 죽은 아기를 업고 전철을 타고 들에 나가 불을 놓았다 한 마리 들짐승이 되어 갈 곳 없이 논둑마다 쏘다니며 마른 풀을 뜯어 모아 죽은 아기 위에 불을 놓았다 겨울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붉은 산에 해는 걸려 넘어가지 않고 멀리서 동네 아이들이 미친년이라고 떠들어대었다 사람들은 왜 무시래깃국 같은 아버지에게 총을 쏘았을까 혁명이란 강이나 풀. 봄눈 내리는 들판같은 것이었을까 죽은 아기 위에 타오르는 마른 풀을 바라보며 내 가랑이처럼 벗고 드러누운 들길을 걸었다 전철이 지나간 자리에 피다 만 개망초꽃 시집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작가 : 정호승(1950- ) 경북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모르는 영희」가 당선되고, 1973년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는 단편소설 「위령제」 당선. 『반시』 동인. 소월시문학상 수상(1989). 국가 독점 자본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남한 체제 내에서 삶의 근거를 빼앗긴 서민들의 울분과 절망을 노래하면서, 그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가 올 수 있다는 넉넉한 믿음을 갖게 해준다. 시집으로는 『슬픔이 기쁨에게』(창작과비평사, 1979), 『서울의 예수』(민음사, 1982), 『새벽 편지』(민음사, 1987), 『별들은 따뜻하다』(창작과비평사, 1990) 등이 있고, 장편소설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민음사, 1993) 등도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80년대 초에는 혁명의 피비린내가 서려 있었다. 한반도의 산천에 뿌려진 것은 힘없는 민중들의 피였으며, 온 나라의 공기를 진동시킨 것은 민중들의 비탄 젖은 신음과 통곡이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광기를 앓고 있는 현실을 자연의 비유를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죽은 아기를 태우는 미친년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우시래기국이라는 비유로 알 수 있듯이 힘없고 초라하기만 한 백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들짐승처럼 방황하고 죽은 아기는 전철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어나 짓밟히는 개망초꽃으로 피어난다. 억압당하고 있는 민중의 현실이 자연의 모습을 빌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이란 강이나 풀, 들판 같은 것일까라고 묻고 있지만, 아마도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혁명은 자연의 순리와 다르게 인간의 폭력이 빚어내는 일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 속에 고통 당하는 민중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미친년처럼 이리저리 쏘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슬픔을 슬픔으로, 고통을 고통만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죽은 아기를 업고 들로 나가 마른 풀을 모아 아기를 태우는 행위는 슬픔과 고통을 승화시키는 제사의식처럼 비장하다. 그 의식을 통해 현실의 모든 고통을 훨훨 털어 버리게 된다. 죽은 아기는 민중의 슬픔이 덩어리진 한(恨)을 상징한다. 그 아기가 개망초꽃으로 비록 작고 보잘것없지만 다시 소생하듯이, 민중의 한은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희망을 간직하는 생명력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해설: 조남현]



나온데-네이버블로그 저 푸른 소나무처럼

국화과의 쌍떡잎 한두해살이 풀이다. 높이는 50~150cm에 이른다. 북아메리카가 원 산지인 외래종이다. 전체에 거친 털이 나고 줄기는 장대가 곧게 서 있는 모양을 이 루고 있다. 꽃은 7~9월에 개화하고 흰색이다. 꽃의 총포에는 털이 있으며 열매에도 바람에 날리기 쉬운 갓털(관모)이 있다. 뿌리는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풀 전체를 비봉이라 하여 청열, 해독, 거풍, 지양의 효능이 있어서 중이염, 결막염, 풍습골통 , 혈뇨를 치료하는 데에 쓴다고 한다. 한국 전지역과 전세계에 분포한다.

망초와 유사한 종으로 기본적 특성이 동일한 개망초가 있다. 외형적 구별로는 개망 초는 꽃이 좀 더 크고, 개화기가 망초보다 1달 정도 늦다는 차이 이외는 거의 사촌 형제라고 불리울 만하다. 개망초의 꽃모양이 마치 계란을 닮았다고 해서 “계란꽃” 이라고도 불리운다(아래 그림 개망초). 망초와 개망초는 열매를 맺으면 조그만 갓털 (관모)가 붙어 있어 바람을 날리어 번식을 한다. 망초와 개망초 한그루에 맺는 열 매의 갯수가 어마어마 하여 그에 따른 번식력이 엄청난 풀꽃이다.


망초라는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망초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도입경위는 철도공사를 할 때 철도침목에 묻어나온 것 으로 추정되는데,그 직후에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전 에는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풀이 논과 밭에서 보이기 시작하였고, 엄청난 번식력으로 그 제거가 쉽지 않자 일본이 나라를 망치게 하려고 그 풀을 퍼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풀의 이름을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라고 해서 망국초 (亡國草)라고 불렀고 그것이 변형되어 망초가 되었다는 것이다(그 외 망초는 농약을 쳐도 잘 죽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이유로 농부들이 '이런 망할 놈의 풀!' 해 서 이름이 망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망초의 귀화시기에 비하여 농약이 본격적 으로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인 점에 미루어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개망초는 망초에 비해 꽃이 더크고 분홍색이 돌며 예쁜 편이다. 그런데 앞에 개란 접두사가 붙었을 때는 일반적으로 “무엇 보다 못한”이란 의미를 지늬고 있는데 왜 더 예쁜 개망초에 개자를 붙혔을까? 그것은 나라를 망하게 한 꽃이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냐는 우리 선조들의 분노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일제 강점기의 겪었던 선조들의 뼈아픈 아픔이 읽히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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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라는 풀은 워낙 많은 씨앗으로 강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식물이라, 농부들의 입 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풀이 아니다. 그런데, 망초는 많은 씨앗으로 번식할 뿐 쇠비 름과 같이 자체 생존력이 강한 식물은 아니기 때문에 막상 망초를 밭에서 제거하려 고 하면 성가실 뿐이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씨앗이 익기 전에 낫등으로 밑 둥을 간단하게 제거하면 그해 연도에는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그래서 망초는 논밭 보다는 빈공터,,, 야생의 초원지 등에서 더 흔히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우리선조들은 망초에 망국초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그토록 강한 원망을 토 로하였을까?

해마다 쉼없이 돋아나지만, 그래도 제거할 수 있는 대상…. 식민지의 척박한 상황에 서 망초를 낫으로 베어 내듯이 왜놈들도 그렇게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 던 것은 아닐까? 어려웠던 시절에는 망초와 개망초의 잎이 아직 연한 때에는 이를 된장국에도 넣어 먹고 나물로 상용하였다는 이야기를 볼 때 우리 선조들이 망초나 개망초를 그리 배척만을 한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어쩌면 우리 선조들에게 있어서 망초와 개망초는 원수들을 상징하기는 것이기는 하 였으나, 동시에 망초와 개망초를 낫으로 베어냄으로써 그 어려운 시절을 견딜 수 있 는 카타르시스이기도 하였고 그럼으로써 그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이겨나가는 가까 운 친구이기도 하였던 것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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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통계를 보니, 우리나라 국민의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들이 콘크리이트에 둘 러싸인 도심에서 사는 모양이다. 현재는 반쪽으로 나누어져 있기는 해도 빼앗긴 나 라도 찾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매 한가지일터 인데, 이 답답한 콘크리트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고 벗삼아 어 려움을 이겨내고 있을까? 망초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이 풀꽃을 망국초라 부르며 어 려운 세월을 이겨낸 지혜들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