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스크랩] 백기완 스승님, "나를 키운 것은 가난, 어머니, 민족 문화"

한시알 2006. 3. 16. 06:56
백기완, "나를 키운 것은 가난, 어머니, 민족 문화"
[오마이TV 2006-02-17 08:45]
[오마이뉴스 문경미]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 이야기'

'휴전선 달빛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서 피빛인가 말 좀 하려마.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어버이 정그리워 우는 이 마음.

대동강 한강물은 서해에서 만나 남과 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너처럼 내마음도 울고 있단다.' (나훈아 <녹슬은 기차길>)

10·26 사건 후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1979년 11월 29일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투옥, 계엄사령부의 모진 고문에도 끄떡없던 '통일투사' 백기완을 한없이 눈물짓게 한 노래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밥 갖다주는 아이가 '아저씨가 불쌍하다'며 불러준 이 노래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고문으로 몸을 가누지 못해 똥오줌을 받아줘야 하는 상태에서도 연필이 없어 입으로 <백두산 천지>라는 시를 쓰면서 굳게 마음을 다지던 나인데 왜 유행가를 듣고 울었는가 말이냐"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애달프면서도 우렁찬 목소리로 반주없이 노래를 부른 백 소장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이어 "이 노래가 말하는 건 '한반도의 분단은 강요된 비극'이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6일 경기도 광주시 한국노동교육원에서 열린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기 대의원대회에 초청받은 백 소장은 '노래에 얽힌 인생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강연을 펼쳤다.

그는 "내 의식을 키운 것은 첫째가 가난, 둘째가 어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 셋째가 우리 민족의 문화"라며 "문화 가운데서도 노래, 그중에서도 유행가가 나를 키우는데 보탬이 됐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며 노래에 얽힌 인생사를 풀어놨다.

"<비 나리는 고모령>은 우리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노래"

<비 나리는 고모령>을 소개하면서는 6·25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피난길에 군대에 징집됐다. 그러나 징집자들을 태운 차가 미끄러져 크게 굴러 떨어졌고, 그는 부상당한 채 논두렁에 쓰러져 있었다.

'비 나리는 고모령,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 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해가 지고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노랫소리가 나즈막하게 들리는 어떤 집으로 향했고, 거기서 총맞아 죽은 두 남녀와 이들의 시신을 안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죽은 두 남녀는 부부였는데 겁탈하려는 미군을 뿌리친 아내가 총에 맞았고, 이를 본 남편이 그 미군을 공격했다가 역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웃이던 남자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

이 남자는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써 언젠가 전달하기 위해 몸에 지니고 다녔다. 내용은 이 부부를 죽인 미군에게 복수해달라는 것. 그러나 그 편지를 발견한 한 관리가 '우리를 돕는 미군을 해하려는 자'라며 그를 '빨갱이'로 몰았고 그는 즉결처분으로 사형당했다는 것이 백 소장의 이야기다.

백 소장은 "이 노래는 6·25 당시 많이 불려지던 노래"라며 "우리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말했다.

이날 백 소장은 <세세연연> <이원애곡> <화류춘몽> <세동무> <집없는 천사> 등 모두 7곡이 유행가를 소개하면서 어린 시절 겪었던 일제의 탄압, 가난으로 고생한 얘기 등을 풀어놨다. 백 소장은 당초 11곡을 소개하려 했지만 시간에 쫓겨 다 풀어놓지 못했다.

"유행가는 그 시대 백성들의 한맺힌 역사를 얘기하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하는 불꽃"이라는 백 소장은 "남녀계에만 치중하는 요즘 유행가들의 정서 흐름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백 소장의 강연 수익금은 통일·민중운동의 요람이 될 노나메기 문화원 건립기금으로 쓰여진다. 백 소장은 강연을 끝낸 후 "목숨이 살아있는 한 이런 형식의 강연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글 - 안홍기 기자 >

(문경미 기자)
출처 : 장산곶매 백기완
글쓴이 : 한시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