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백기완 "우리 역사는 감격을 학살당했다" - 누름쇠(프레시안)060609

한시알 2006. 6. 9. 22:27
백기완 "우리 역사는 감격을 학살당했다"
[프레시안 2006-06-09 19:30]
[프레시안 성현석,송호균/기자]  독일 월드컵이 드디어 9일 밤(한국시간) 개막됐다.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많은 이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광장을 붉은 물결로 메웠던 당시의 경험은 유난히 강렬하다. 그래서일까?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제기되는 논의는 대부분 2002년의 경험에 기대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시의 열기를 재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당시의 열기가 되살아났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당시 왜 그토록 축구에 열광했던 것일까?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은 우리 사회의 축구 열기가 "감격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역사는 동학농민운동의 경우처럼 민중이 막 승리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패배로 돌아선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백 소장은 이 과정에서 민중들이 마땅히 느꼈어야 할 감격이 '학살당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학살당한 감격'에 대한 그리움이 축구 경기에 대한 환호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백 소장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선수들의 공 차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직접 세상과 역사를 걷어차고 뒤집어 엎을 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감격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프레시안〉은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찾아 백기완 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백 소장은 한국 사회의 축구 열기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함께 축구에 얽힌 개인사,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경험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 프레시안

  다음은 이날 백 소장이 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축구라…. 언젠가 한번 그 공차기 세계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지. 그 때 이야기도 참 할 게 많은데. 어디 슬슬 이야기를 꺼내볼까.
  
  "내 꿈이 원래 축구선수였어"
  
  흔히 백기완하면 말야. 통일이니 해방이니 또 미 제국주의 해체니. 뭐 이런 무거운 주제만 떠들고 다닌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축구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더라고…. 축구가 뭐 별 거야? 가다보면 길거리에 돌멩이도 차잖아. 그러다보면 둥근 공 차고 싶어지는 거지 뭐.
  
  내가 원래 어려서부터 공을 잘 찼어. 그때 공이라는 건 새끼줄을 둘둘 말은 거야. 돼지 오줌통을 차기도 하는데, 그런 건 초등학교 애들이 구하기가 힘들어. 일 년에 한 번쯤 일본사람들 몰래 돼지를 잡거든. 그런데 돼지 오줌통이라는 게 한 마리에 하나밖에 안 나오는 거잖아. 꼬마들이 어디 감히 손댈 수 있겠어. 그래서 우리는 새끼줄를 둘둘 말은 걸 찼다고. 내 발을 좀 봐. 발톱이 없잖아. 어릴 때 그거 차고 놀다가 발톱이 빠진 거야.
  
  어릴 적에 공을 찰 때 말야. 친구들하고 내기를 하거든. 진 놈들이 논두렁에서 빨간 무를 뽑아오기로 하는 거지. 배가 고프니까 그걸 그냥 흙만 털어 우적우적 씹어먹는 거야. 또 겨울에는 동치미 있잖아. 그걸 내기에 걸어. 내기에 이겨서 동치미를 꺼내 먹을 때 말이지. 얼음을 돌맹이로 치면 안 돼. 독까지 깨져 버리거든. 꼬챙이로 구멍만 살살 뚫어서 한덩이씩 꺼내는 거야. 그걸 들고 으적으적 씹어 먹을 때의 맛이라니…. 그게 또 승리의 맛 아니겠어. 공차기에서 이겼을 때 느끼는 맛 말야. 이긴다는 것 자체가 꼭 나쁜 게 아니야.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웃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밀어붙이는 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어릴 때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 축구선수였어. 8·15 해방 때 내가 중학생이었거든. 어느 날 우리 아버지가 "기완아, 서울 가자" 그러는 거야. 축구화도 사주고 선수도 시켜준다고 하신거지. 신이 나서 따라 나섰는데 우리 아버지가 돈이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거야. 축구화도 못 신어보고, 학교도 못 다녔지. 운동장이 어디 있나. 그냥 아무데서나 차는 거지.
  
  아, 그런데 어느날 내가 공을 못 차게 됐어. 박정희가 내 무릎을 꺾어서 못 쓰게 만들어 버린 거야. 남산에 끌려갔거든. 거기에 있는 수사관이 "야 네가 축구 좀 한다며?" 그러더니 두 무릎을 앞으로 확 꺾어 버리더라고. 여기 내 무릎 좀 봐. 지금도 부어 있잖아. 무릎을 딱 꺽어버리니까 관절이 수박만하게 부어오르는 거야. 시꺼먼 고름이 한 병 넘게 나왔지.
  
  그래서 사실 난 축구라면 화부터 나. 다시 말하면 한이 맺힌 거지. 밖에서 누가 공 차는 소리가 '퉁퉁' 들리면 지금도 흥분이 돼. 나가서 그거 차고 싶어서 말야. 흥분이 되면서도 또 화도 나는 거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다 짓밟혀 버렸는데, 나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버렸잖아.
  
  "공차기란 이 벗나래의 거짓을 차 올리는거야"
  
▲ ⓒ 프레시안

  그렇게 꿈이 꺾이면서 내가 깨우친 게 있어. 재주와 뜻은 있어도 돈과 힘이 없으면 그것을 펼 수 없는 이 벗나래(세상)는 잘못된 거구나. 이걸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난 공차기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공을 차올린다는 건 잘못된 이 벗나래의 거짓을 걷어 차는 거야. 참 벗나래가 뭔지 알아? 모른다고? 그건 세상이야. 한자로 '세상(世上)'이라고 한 번 써봐. 그게 무슨 뜻이 있어. 아무런 함축미가 없잖아. '벗나래'에서 '벗'은 이웃이라는 뜻이야. "이웃이 모두 다 나와 함께 있다"는 뜻이지. 그게 바로 세상이란 말이야.
  
  이런 말을 하면 어린애들은 "할아버지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그러겠지.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우리말만 쓰자고 하는 거냐" 하겠지. 어느 세상은 무슨 어느 세상이야? 미국놈들이 우리세상 다 먹어버린 세상이지 뭐.
  
  그러니까 공차기란 이 벗나래(세상), 우리 땅별(지구)의 거짓과 모순을 아울러 차는 짓이야. 뒤집어 엎고 새로 만들겠다는 거야. 이게 축구를 보는 내 나름의 생각이야.
  
  "지단이 800억? 구라파 축구는 썩었어"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공차기 선수권 대회를 했잖아. 내가 공차기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축구협회에서 전화가 왔어. 선수들한테 기를 좀 넣어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선수들에게 동의를 받아와라." 선수들이 듣고 싶어 하면 하겠다고 그랬어. 그런데 축구 선수들의 관리는 감독이 하는 거잖아. 그래서 감독에게도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어.
  
  아, 그랬더니 딱 동의를 받아 왔더라고. 솔직히 내가 선수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할 줄 알겠어. 내가 그랬어. "경기 앞두고 '미 제국주의자들 때려 부수고 와라' 이럴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축구협회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 "선생님이 설마 그 자리에서야 그런 말씀을 하시겠냐"고. 사실 맞는 말이지.
  
  내가 선수들 앞에서 이야기 한 첫 마디가 "구라파 축구는 썩었다"라는 거였어. 그랬더니 선수들이 다 놀라는거야. 어디 신문방송에서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있나? 없잖아. 여기 할아버지 하나지. 예를 들어볼까. 왜 지단이라고 있잖아. 그 왜 공 잘 차는 불란서 꺽다리. 연봉이 800억이야. 피구는 700억. 호나우두인가. 왜 브라질에 그 잘 뛰는 놈은 500억이고. 참 나는 그런 숫자를 종이에 써 본 적도 없어. 이런 축구 문화는 썩은 거야. 그래서 이게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
  
  내가 박지성 선수를 참 좋아해. 박지성 그 애는 그 나이 또래다운,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 정말 공차는 일밖에 모르는 애 같지 않아? 그런데 그런 애들을 돈 벌이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
  
  선수들을 만나면 꼭 그런 말을 해. "돈 받는 광고는 찍지 마라." 축구가 직업인 애들한테 월급을 받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지. 그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돈 받는 광고는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내가 그날 선수들에게 한, 또 다른 이야기는 말이지. 열여덟 살 때 미군을 때려눕힌 이야기야.
  
  전쟁 때였어. 근처에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아 글쎄. 중학교 3학년 여자 애 하나가 매일 밤마다 그 근처를 서성거리는 거야. 걸핏하면 철조망에 매달리고 말야. 미군한테 강간을 당한 거였어. 그런데 미국 놈들이 오히려 그 여자 애를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부대를 찾아갔지.
  
  "덩치 크고 힘 센 놈들이라고 주눅들 필요 없어"
  
  "이 중에서 제일 센 놈 나와라." 이렇게 외쳤어. 어느 나라 말로 했냐고? 아 내가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거든. 그 정도 이야기는 다 할 수 있어. 내가 그랬지. "나랑 한판 붙어서 나한테 지면, 너희 놈들이 저 여자 애한테 무릎 꿇고 빌어라."
  
  눈이 펑펑 오는 밤이었어. 덩치가 딱 코끼리만한 놈이 어슬렁어슬렁 나오더라고. 가만히 보면 미국사람들은 결투를 참 좋아해. 하여간 힘에서 내가 어디 상대가 되나. 그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닐 때거든. 한방에 나가떨어졌지. 그렇게 쓰러지니까 "내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축구선수도 한번 못하고 여기서 죽는구나." 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탁 억울해지더라고.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그놈의 턱주가리를 차올렸어. 아, 그런데 기운이 워낙 없으니까 발이 턱까지 안 올라가고, 옹금(급소)를 차버린 거야. 아, 왜 남자들 급소 있잖아. 그러니까 그 놈이 탁 주저앉데. 냅다 이마로 받아버렸지 뭐. 아, 박치기말야. 내가 이북에서 왔잖아.
  
  내가 선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다음에 말야. 이렇게 이야기했어. "나도 코끼리만한 서양 애를 메쳐봤다. 별 거 아냐. 덩치 크고 힘 센 놈들이라고 주눅들 필요 없어. 온 몸의 기를 모아서 확 쳐봐. 반드시 꼬꾸라뜨릴 수 있어. 그리고 재수 없이 16강이 뭐야. 으뜸 알지, 으뜸? 온 몸으로 받고 차서 으뜸 먹어 버리는 거야,"
  
  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히딩크 감독이 멀뚱히 쳐다보고 있더라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잖아. 통역이 와서 다 전해 줬어. 그랬더니 히딩크가 그때부터 나한테 전화도 하고, 인천공항에서 만났을 때는 껴안고 그러더라고. 편지도 보내고 말이지. 2003년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도 신라여관(신라호텔)에서 한 번 만났지. 히딩크 말야. 똑똑하고 멋진 친구야. 개고기를 한 번 사줘야하는데, 물어 봤더니 못 먹는다고 하더라고. 영 아쉬워.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감격을 학살당한 겨레
  
▲ ⓒ 프레시안

  요즘 말이지. 축구 때문에 온 나라가 너무 들뜬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 물론 그런 점이 있지. 일리 있는 말이야. 그런데 좀 틀린 말이기도 해. 내 이야기 한번 들어 봐. 왜 우리 겨레는 한(恨)이 많다고 하잖아.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 우리는 말야. 감격을 학살당하고, 축제를 빼앗긴 겨레야. 이렇게 이야기해야 말이 돼.
  
  동학농민혁명 때 반제 반봉건 싸움하면서 우리 농민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알아? 30만이야, 30만. 막 이기려고 할 때 일본 놈들이 와서 뒤집어 버린 거야. 그러니까 민중이 승리하는 그 감격적인 순간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거지. 사람만 죽은 게 아냐. 감격이 학살당한 거야. 8·15 해방은 또 어때? 해방될 때까지 젊은이만 수백만이 죽었지. 그런데 해방의 감격을 맛보려는 순간 그 감격이 학살당했잖아.
  
  그렇게 학살당했던 우리의 감격이 땅 밑에서 부글부글 끓는 거야. 터져 나오지를 못 하는거야. 이걸 봐야 해. 축구에 왜 들뜨는지 모르겠다고? 이렇게 터져 나오지 못 하고 부글거리던 감격이 환호를 통해 터져 나오는 거야. 축구를 볼 때 터져 나오는 그 환호 말야. 그 밑바탕에는 학살당한 감격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그런데 감격과 환호는 다른 거거든. 그걸 알아야 돼. 자기 기분만 맞으면 '와' 하고 나오는 게 환호야. 그런데 감격은 그게 아냐. 아름답고 거룩하고 진짜 역사에 빛나는 일을 볼 때 터져 나오는 눈물과 아우성을 감격이라고 하는 거야. 우리는 감격을 학살당해서 환호만 남아 있어. 게다가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게 끊임없이 감격을 죽이는 체제거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환호만 남아 있는 거야. 이제 감격을 그리워만 해서는 안 돼. 감격을 되찾아야 해.
  
  "우리가 승부욕의 노예라고?"…"도전정신이 넘치는 거야"
  
  요새 공차기 이야기하는 사람들 보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승부욕의 노예가 됐다는 거지. 이런 말 들어봤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야. 그런데 온전히 맞는 말은 아냐. 뭘 살짝 잘못 짚은 거지. 내 이야기 한번 들어 봐.
  
  우리 겨레는 원래 도전하는 마음이 몸에 밴 겨레거든. 왜냐고? 잘 들어봐. 어릴 때 마당에서 땅따먹기 놀이 해 봤지? 왜 있잖아. 땅 바닥에 금 그어 놓고 하는 거. 애들도 땅에 무척 집착하잖아. 왜 그런 것 같아? 고려 500년, 조선 500년 이렇게 천 년 동안 우리는 압록강 이남으로만 밀리기만 했잖아. 그런데 말야 그 동안 지배계층은 계속 아들 낳고 손자 낳고 하면서 계속 수가 늘어난단 말이지. 그러니 어떻게 됐겠어. 지배계층은 계속 늘어나는데 이 놈들이 지배해야 할 땅은 모자라잖아. 대륙은 다른 놈들이 다 차지했고 말이지. 그러니 민중들만 죽어나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됐겠어. 너도 나도 땅에 대한 욕망이 간절한 거야. 그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지 뭐야. 처절한 거지. 여기서 도전하는 마음이 생겨난 거야. 이렇게 좁은 땅에서 답답하게 돌아가는 판을 깨버리고 말겠다는 마음 말야. 긴 역사 속에서 이런 도전의식이 몸에 밴 겨레라는 거지.
  
  그런데 공차기가 뭐야. 발로 뻥뻥 차는 거 잖아. 그게 뭐야? 도전이잖아. 도전. 사람들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현실에서는 발산하지 못 하잖아. 얼마나 답답하겠어. 그러니까 공차기를 때박(계기)으로 삼아서 확 쏟아내는 거야. 그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승부욕의 노예가 돼서, 공차기에 열광하는 게 아냐. 공차기를 통해 이 답답한 판도 함께 차버리겠다는 거야. 분단의 현실, 더러운 자본주의의 현실까지 같이 차버리겠다는 거야. 이건 도전하고 싶은 기질이지. 이런 기질이 축구장에서도 터져 나오는 거야.
  
  요즘 젊은이들이 공차기는 좋아하는데 자기밖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그건 젊은이들이 아직 공차기가 뭔지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공차기는 원래 나를 죽이는 운동이야. 선수 혼자서 영웅이 되려고 하면 경기가 안 되잖아. 나를 죽이는 대신 11명이 하나가 돼야 하는 운동이야. 나아가 그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 모두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야. 요즘 젊은 사람들 자기 한 몸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데, 공차기 보면서 그런 생각도 좀 깨야 돼.
  
  "붉은 악마가 아니라 '붉은 쇠뿔이' 어때?"
  
▲ ⓒ 프레시안

  그리고 이놈 자식들. 말들 좀 똑바로 하라고 해. 응원할 때 '파이팅, 파이팅' 하지. 그 말 좀 쓰지 말자는 거야.
  
  내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목이 메도록 호소를 했어. 파이팅이 뭐야? "싸우자, 이기자, 죽이자" 뭐 이런 뜻 아냐? 공차기 하면서 우리가 누구 죽이자는거야? 그런 것 아니잖아. '아리아리' 이렇게 외치잔 말야. 왜 그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이야. 아, 왜 진도아리랑에도 나오잖아.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 노래 몰라? '아리아리'가 무슨 뜻인가 하면 말야. 없는 길은 찾아가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는 뜻이야. 공차기 하는 선수들이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이제 '파이팅'이라는 말 쓰지마. 대신 "아리아리!" 이렇게 외치는 거야.
  
  공차기 경기를 보다 보면 말야. 누가 나와서 '크로스', '마인드 컨트롤' 이따위 잡소리를 하더라고. '크로스' 그거 어느 나라 말이야? '크로스'가 아니라 '가로 지르기'야. '마인드 컨트롤'은 '마음 다스리기', 패널티 킥은 '문앞 차기' 이렇게 불러야지. 좋은 우리말이 있잖아. 왜 굳이 어려운 남의 말을 써?
  
  왜 '붉은 악마'라고 있지? 참 좋은 사람들인데, 말은 좀 고쳐야 돼. 붉은 악마가 아니라 '붉은 쇠뿔이'. 이렇게 불러야 해. 우리말로 제일 힘센 사람을 쇠뿔이라고 하거든.
  
  그런데 말야. 그냥 힘만 센 건 쇠뿔이가 아냐. 그건 그냥 항우장사라고 부르면 돼. 쇠뿔이는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메치는 사람이야. 이번에는 붉은 악마 대신 '붉은 쇠뿔이'라고 부르는 거 어때? 이번 공차기 대회를 때박으로 삼아 이렇게 좋은 말들이 널리 퍼지면 얼마나 좋아. 이 백기완 할아버지 말, 들을 거야? 안 들을 거야?
  
  (구술 정리 = 성현석, 송호균 기자)

성현석,송호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