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스크랩] “축구로 신바람 나는게 우리 민족”

한시알 2006. 7. 4. 14:58
“축구로 신바람 나는게 우리 민족”
[내일신문 2006-06-22 17:27]
[내일신문]

월드컵과 삶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실수도 실패도 축구이고 인생

2002년 강연으로 히딩크 감동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73) 소장은 축구 마니아다. 어린시절, 축구선수 시켜준다는 말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을 정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백 소장의 ‘축구론’에 감동해 네덜란드로 가는 길에, 그리고 대회 이후에도 백 소장과 만났다.

그는 “평생 축구를 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 한다. 그에게 축구는 놀이면서 투쟁이고 혁명과 같다.

◆서울로 도망가던 아버지, “서울 가면 축구화 사줄게” = 독립운동가 집안의 백기완 소장은 해방되던 해 고향인 황해도 구월산 자락을 떠나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왔다. 고향엔 어머니와 형제들이 남았다.

백 소장의 아버지는 해방된 세상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다 도망쳤다. 전과자들로 채워진 ‘로스께’는 해방이 뭔지, 해방군이 뭔지 몰랐고, 조선사람을 괴롭혔다고 한다.

아버지는 소년 백기완을 서울로 데려가기 위해 “기완아, 서울 가면 축구화 사주고 축구선수도 시켜 줄께”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천재로 불리던 아들 백기완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가난했던 소년 백기완은 축구선수가 되지 못했다.

백 소장은 “결국 나는 축구도 못하고 중학교도 못갔어, 돈이 없어 맨 발로 다니는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주 있고 뜻이 있어도 돈 없으면 펴지 못하는 세상, 거꾸로 된 세상을 걷어차고 바로 엎는 ‘축구’를 평생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45년 13살 때 떠나온 고향에 백 소장은 아직 가지 못했다. 숱한 이산가족들처럼. 백 소장은 “2000년인가, 5일동안 평양에 갔는데, 가면서 울고 가서 울고 오면서 또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히딩크와 특별한 인연 = 백기완 소장은 2002년 4월 23일 월드컵 대표팀 정신강화를 위한 강연을 하면서 히딩크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한·일 월드컵 대회를 한민족의 신바람을 일으키는 잔치로 만들자던 백 소장은 대표팀 선수들에게 축구를 즐기라며 목표도 16강이 아니라 ‘으뜸’으로 삼으라고 주장했다.

또 온 힘을 다해 싸우면 이길 수 있다며 미군과 싸웠던 당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열 여덟살 때야, 미군에게 윤간당해 미친 여중생이 미군기지를 계속 찾아가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제일 센 놈 나와서 한 판 붙자며 결투를 신청했지. 내가 이기면 너희가 소녀에게 무릎꿇고 사과하고, 내가 지면 나를 죽여도 좋다며. 코끼리만한 놈이 나왔는데, 한 방 맞고 나가 떨어졌지. 한 방 더 맞으면 정말 죽겠다 싶으니 속에서 불덩이가 솟아오르더라. 놈의 옹금(남자 급소)을 걷어찼고, 고개 숙이는 놈에게 박치기를 해 쓰러뜨렸지.”

백 소장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덩치 큰 유럽팀들과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켠에 서있던 히딩크 감독은 강연에 감동해 백 소장을 찾았고,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만났다.

지피지기인가, 백 소장은 “실수도 실패도 축구라는 히딩크는 이탈리아 전에서 문앞차기(페널티킥)에 실패한 안정환을 빼지 않고 그대로 뛰게 했는데, 축구와 인생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안정환 선수는 연장 골든골로 한국의 8강행을 이끌었다.

◆거꾸로 된 세상 걷어차는 축구 한 평생 =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데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백 소장은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는 국민들이 승부에 환호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감격을 느끼고 싶어하는 본능이 축구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소장은 “동학농민전쟁이 승리의 감격을 눈앞에 둔 때 일제에 의해 학살당했고, 수백만이 싸워 일군 광복의 감격을 미제국주의에 의해 또 학살당한 우리 민족이 축구를 통해 환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정당한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잘못된 것을 보고 분노할 줄 아는 그런 감격을 학살당한 우리 민족은 자기 기분에 따라, 이기적인 환호성만 지르고 있다”며 “피어보지 못하고 학살당한 감격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소장은 월드컵이 끝난 후 축구로 끓어오른 환호성을 진정한 감격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문화예술운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해 안에 ‘백기완의 노래에 얽힌 인생이야기’를 100번 강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월드컵의 감동이 이기적인 ‘환호’가 되면 응원이 끝난 후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감격’이 되면 함께 청소하고 함께 즐기는 길거리응원문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축구를 하며 거꾸로 된 세상을 걷어차고, 학살당한 감격을 살리자고 하는 백기완 소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출처 : 장산곶매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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