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백기완

[스크랩] Re:“지금은 민간독재 시대, 군사독재시대 보다 나을 것 없다"

한시알 2006. 7. 23. 02:39
40년 지나 고인으로 한 자리에 모인 세 예술가
[오마이뉴스 2006-07-21 14:42]    
[오마이뉴스 최상진 기자]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화가 이응로, 작곡가 윤이상, 시인 천상병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20일 오후 7시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렸다.

 
▲ 서대문 형무소 입구. 문화제를 알리는 조형물이 서 있었다.
ⓒ2006 최상진
이날 오후 6시 30분, 문화제가 열리는 인근 역인 3호선 독립문역에 도착하자,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올라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입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지금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 때문일까. 문화제를 보기 위해 나온 시민들보다 기자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정문을 따라 들어가 보니 본관 왼편 잔디밭에 세 사람의 사진으로 꾸며진 조그마한 무대가 마련돼 있었다. 무대 뒤편에는 고 이응로 화백의 작품 <구성>이 있었고, 무대 위에는 <군상>이 그려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면서 행사장에는 관계자와 시민들이 속속 입장했다. 그중 눈에 띄는 사람은 고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인 목순옥(69)씨였다. 목씨는 "윤이상 평화재단에서 이렇듯 좋은 행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한껏 상기된 얼굴로 문화제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민영 시인 "실질적인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고 천상병 시인의 시에 작곡가 변훈이 곡을 붙인 '귀천'을 한 성악가가 나와 불렀다. 낮게 반복해서 울려 퍼지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가사가 비를 타고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 가곡 <귀천>을 부르는 모습.
ⓒ2006 최상진
행사를 주최한 관계자들의 인사말과 축사가 끝난 후 천 시인의 절친한 친구였던 민영 시인이 천 시인의 시 '새'를 낭송하는 순서였다. 민 시인은 시를 낭송하기 전에 천 시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아직까지도 세 예술인의 명예회복이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 말했다.

"여기 몇 분의 정치인이 오셨습니다. 그중 몇몇은 인사말만을 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이런 표면적인 행사를 한다고 명예회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술 한 잔 걸치며, 욕이나 퍼붓는 게 낫지요. 현실적인 명예회복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순간 민 시인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좌석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민 시인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천상병 시인이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고 했을 때 '세상에 그럴 수가 있냐'며 크게 웃던 사람입니다. 천상병이라는 사람은 이데올로기로 묶을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이 친구가 아직까지도 간첩으로 여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짧게 이야기를 마친 민 시인이 '새'를 낭송하는 동안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이어 장마답지 않게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고 윤이상 작곡가의 '편지(김상옥 시)'와 첼로연습곡 '돌체'가 연주됐다. 그 선율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갔다. 연주가 끝나자 동백림 사건의 당사자인 최창진 전 교수가 말을 이었다.

"저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고 윤이상씨께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유치장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동백림 사건으로 인해 교수로 재직 중이던 대학에서 물러나 8년간 공직을 맡지 못했던 적도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고 윤이상, 이응로, 천상병씨 모두 바로 이곳에서 억울하게 옥고를 치렀습니다. 위 세분은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들을 국가에서는 아직도 간첩으로, 매국노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내리는 비는 천상병 시인이 고마워 흘리는 눈물"

이날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로 유가족 대표해서 목순옥씨가 단상에 올랐다.

"제 뒤에는 천상병 시인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천원을 들고 좋아하시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이처럼 시인은 평소 아이같이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내리는 이 비도 시인이 여기 모인 여러분들께 너무 고마워서 흘리는 눈물일지도 모릅니다."

▲ 고 천상병 시인의 미망인 목순옥씨(오른쪽)와 백기완 선생.
ⓒ2006 최상진
짧은 목씨의 인사말로 이날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가 끝났다. 문화제가 진행된 한 시간이 짧았는지,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동백림 사건 유족들과 관계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으며,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도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동백림 사건'이 있은 지 18년이 지난 후에야 태어났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전부였다. 이런 내게 이날의 문화 행사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당사자를 만나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행사 내내 내린 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시듯 고 이응로 화백, 윤이상 작곡가, 천상병 시인의 숨결이 내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한 문화제였다.

▲ 문화제 무대. 세 예술인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2006 최상진
'40년이 지났건만…‘ 동백림 거장 3인 명예회복은 언제쯤에나
[노컷뉴스 2006-07-21 10:42]    

국정원 진실위, 과장된 간첩사건 결론 불구 포괄적 사과 권고에만 그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스산한 저녁 비가 내리던 20일 오후 7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故천상병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인 가곡 <귀천>이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이 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윤이상평화재단, 국회동북아연구회는 지난 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던 3인의 예술가를 추모하는 ‘동백림 3인의 거장- 이응노 · 윤이상 · 천상병을 기리며’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가 열린 서대문형무소는 이들이 '동백림'사건으로 인해 투옥되어 수감생활을 했던 장소다.

故윤이상 선생의 가곡연주, 故천상병 시인의 시 낭송. 故이응노 화백의 작품전시 등으로 이루어진 이 날 행사에는 김명곤 문화부 장관, 천영세, 유선호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유가족 등 150여명의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김 장관은 추도사를 통해 “격랑과 폭우가 심했던 현대사 속에서도 혼을 잃지 않고 예술의 꽃을 피운 거장들이 오히려 조국에서는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며 “세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 문화로 삼기 위해 문광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날 행사에서는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조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故천상병 시인의 절친한 문우인 민영 시인은 “군사권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의 진상이 40여년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며 “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행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 고 울분을 토했다.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 ‘동백림’ 사건에 연루 되었던 최창진 씨 역시 “역사는 변해야 하고 과감히 개선되어야 한다”며 “현재의 상황이 대단히 가슴 아프고 서글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시인의 미망인 목순옥 여사는 "돌이켜보면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세 분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날도 기대하고 있다"며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지난 1월 국정원 과거사 진실 조사위는 ‘동백림’ 사건에 대해 '중앙정보부에 의해 과장되고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관련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포괄적인 사과를 권고하는데 그쳤다.

'재야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지금은 민간독재 시대, 군사독재시대 보다 나을 것 없다"

‘재야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현 정권에 대해 '민간독재'라 정의하며 일침을 가했다.


20일 저녁 백 소장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의 주최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동백림 3인의 거장— 이응노, 윤이상, 천상병을 기리며’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추도사를 위해 무대에 오른 그는 최근 발생한 타워크레인노조의 파업을 언급하며 “아직까지 이렇게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었던 예술인들을 추모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해서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이라며 “아직도 우리는 13일에 한 명꼴로 노동자들이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져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오늘의 행사가 단순히 세 분에 대한 추모행사로 그친다면 부족하다” 며 “진정으로 세 분을 기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신을 무기로 삼아 민간독재시대를 청산하는 싸움에 나서야 한다 ”고 주장했다.

노컷뉴스 이현구 대학생 인턴기자 hg1116@hanmail.net

출처 : 장산곶매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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